연중 32주간 평신도 주일

2019. 11. 9. 오후 3: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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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2주간 평신도 주일. 2마카 7,1-14; 2테살 2,16-3,5; 루카 20,27-38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1968년 생긴 이래, 벌써 50여년이 흘렀습니다. 이 날이 왜 생겼을까요? 우리가 지금은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고 있지만, 교우들의 대부분의 시간은 교회가 아닌 곳에서 지냅니다.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환경은 비신자들과 어울려 지내다보면 그들과 다름없이 지내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를 지키려 장치를 켭니다. 그 장치란 신앙인이라고 튈까봐? 도드라질까봐..’ 두려워하는 자세입니다. 이 생활을 계속 하다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본인 스스로 신자인지 아닌 지에 대한 분간이 어려워집니다. 남의 눈을 신경쓰다가 점차 무덤덤해 질 것이고요. 결국 신앙은 내 삶에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전락해갑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에는 계속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뭔가 모를 것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분명 미사가 끝날 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말을 듣지만, 실상 미사 후에 어딜갑니까?꼭 복음을 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점차 삶의 척도를 물질이나 경제적인 기준으로 보는 이들이 늘면서, 하느님의 의도와 주님께서 행하신 방법, 그리고 성령의 활동하심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저는 평신도 교령 29항을 소개해 드리면서 그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50년 전에 반포된 평신도 교령 29항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현세 질서의 현실 속에 완전히 깊숙이 파고들어, 현실 운용에서 자기 역할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또한 동시에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와 증인으로서 현세사 한가운데에서 교회가 현존하고 활동하게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키포인트가 뭔지 보이십니까? 현실을 깊숙이 파고들어라. 즉 정확한 현실인식입니다. 자기 역할을 찾아 수행하며 교회인으로서 신앙인의 시각을 지녀라. 나의 뒤를 봐주고 영혼을 돌봐주는 교회를 통해 힘을 얻고 다시금 현실로 뛰어들어라 입니다. --이 유기적이고도 순환적이며 반복적인 구조를 띄어야 함을 말합니다. ~ 이것을 여러분이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는 우리 가정에 대입시켜보겠습니다. 나는 식구와 함께 살고 있으며 회사에서 일하는 가족의 구성원이다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에서 잘 살아내려면 각자가 속한 남편, 아내, 자녀라는 현실에서 자기 역할을 구현하며 신앙인으로서의 시각과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살핀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너무 비신앙적인 곳이기에 여기에서 각자 가진 힘과 노력만 갖고는 주님의 방식으로 살아내기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기에 교회를 통하여 받은 가르침을 되새기고, 신앙 공동체의 도움을 받는다... 천주교가 가진 이점이 무엇입니까? 주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단체나 공동체 모임, 교육 일정이 본당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서울교구에서 많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무시하고 미사 후에 그냥 주보를 반납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회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스스로 거절하는 셈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중 하나라도 무너지거나 하지 않는다면, 우리 가정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럼 가정에서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지정된 날에 같이모여 성경을 읽으며 복음나누기 둘째.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활나눔을 하며 허심탄회한 현실을 공유합니다. 셋째 당연히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게 된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안하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를 알 수 없기에 서로를 오해하고 결국은 포기합니다. 그러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미 가정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여기니까요. 그렇게 가정은 깨져나갑니다. 다들 백이면 백. 가정이 소중하답니다. 헌데 왜 가정이 깨지고 대화는 단절될까요? 여기서 서로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아도 우린 하느님이 주신 혈연으로 뭉쳐진 가족이다. 예전 기억 때문에 비록 껄끄럽더라도 우리 같이 해보자 라는 시도가 필요한데요. 비록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주님의 방식대로 해볼 때,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맞설 수 있는 용기와 가정이라는 마지막 남은 버팀목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상도동 교우 여러분.

  독서와 복음에도 보면 삶에서 위기에 직면한 이들이 나옵니다. 1독서는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라며 용기있는 발언을 하고요. 2독서는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라며 주님을 믿는 자세가 나옵니다. 복음에는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라며 하느님은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하시기에 그분 안에서 죽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실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할 상대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도망가지 말고 방법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인의 공동체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그 기도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를 키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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