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목요일

2019. 11. 13. 오후 1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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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2주간 목요일. 지혜 7,22-8,1; 루카 17,20-25

 

나희덕 시인이 1991년에 발표한 어떤 아이들이란 시를 읊겠습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두 세 살부터

영재교실에서 과외를 받는 아이들


 유치원에서 피아노, 주산, 태권도, 컴퓨터까지

 하루 종일 바쁘신 아이들


 30평은 30평끼리

17평 주공은 17평 주공끼리

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짝을 맞추어 잘 노는 아이들


프라이드를 타고 온 친구의 아버지를

비웃을 줄도 아는 콩코드의 아이들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 줄 테니 저 공 좀 건져달라고

 벌써 유능하게 사람을 부리는 사장님의 아이들 


뛰놀 만한 언덕 하나 없어

 5층 아파트 옥상에서 연을 날리며

 얼레를 풀어 동심을 날려 보내는 아이들

 

그 위태로운 하늘 끝,

 어디선가 날아온 새 한 마리가

 쓸쓸한 어깨 위를 맴돌고 있다

 


 그렇게 삶을 살아온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갑니다. 여기서 작가는 그런 아이들을 위태롭게 바라봅니다. 과연 어떤 어른이 되어갈까? 하면서요. 여러분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으십니까? 우연찮케 수능시험날을 맞이하면서 점수 인생, 경쟁 인생을 전부라 여기며 강요하던 우리가, 이 시험이 끝나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요? 배려요? 이런 시즌을 맞이하며, 우리가 들은 독서의 말씀은 지혜서의 말씀 중에서 지혜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깊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역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가진 지혜란, 이런 것에 감히 견줄 수 없는 차원임을 우리는 들으면서, 읽으면서 인정하게 되는데요. 과연 여러분은 어떤 정도의 것을 얻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떤 것을 선사해주고 싶으십니까?

  주님의 것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맛을 본 이들은 이런 것을 깨닫지요. 내가 참으로 작은 것에 연연하였구나. 쓸데없는 것들에 목을 메었구나..’ 논어의 이인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저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헤아리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요. 그저 물건이나 사람, 다른 것들에 연연한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이었음을요. 복음에도 나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의 감각을 넘어섭니다. 그렇다고 아예 못 알아보지도 않습니다. 언뜻언뜻 당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그 맛을 보게 허락하시지요. 과연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것을 맛보고 싶으십니까?주님은 그 이상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안다면, 우리가 진정 쥐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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