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 60,1-6; 에페 3,2-6; 마태 2,1-12
성탄 밤미사에는 ‘구유 경배’ 라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제단 앞에 모셔진 임금이신 예수님께 절을 하며 예절을 갖추는데요. 우리도 했었지요. 헌데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셨습니까?진심을 다한 정성을 바치는 분들부터 의미를 잘 모르는 분, 또는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분들까지 다양하던데요. 예전 신학생 무렵, 주임신부님으로부터 ‘신학생이 구유를 만들라’ 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고민을 하던 중, 마침 명동의 샬트르 수녀원에서 ‘구유 전시전’을 한다길래 참조할 겸 보러갔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거기 나온 구유를 따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워낙 작품 수준에 해당되는 디테일하면서 스케일이 큰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아직도 생각나는 구유가 있습니다.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의 사람 인형, 소, 말 등의 형상이 100개 이상이 줄지어서 동굴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오는 모습이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들이 줄을 지어 차례로 예수님께 경배하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어떤 마음 자세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하고요. 오늘 복음에 나온 동방박사들처럼 말이지요.
오늘의 말씀은 두 가지의 반대되는 모습이 충돌을 빚습니다. 주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와 주님을 거부하고 끝내 죽이려는 헤로데입니다. 이들은 빛을 찾으러 온 이와 반대로 빛을 죽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대립이 엿보입니다. 사실 옳고, 좋고, 바른 일이라고 하여 모두가 다 좋아라 하진 않습니다.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고,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싫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이처럼 살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 안에는 거짓과 비리, 권모술수가 있습니다. 빛보다는 어둠의 힘에 굴복하여 그것과 손을 잡습니다. 당장 주어지는 것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계속 이렇게 살면 어찌 됩니까?끝내 여기에 갇히지요. 영혼에 마비가 오고요. 치유되기 힘들게 됩니다. 이는 중독된 것이라 하겠는데요. 자신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1독서에는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그들은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라며 기뻐하며 선물을 드리고 있고요. 2독서에는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 며 우리가 드린 것들이 드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돌려받게 된다는 말씀인데요. 그럼 먼저 해야할 것이 있지요. 동방박사들이 그 멀리서 그분께 합당한 선물을 드린 것처럼 여러분은 이제 무엇을 드리시겠습니까? 주님께 참된 것을 드려야 할텐데요. 성탄이 가기 전, 그 마음과 정성을 살펴 드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