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235년 정도 되었다지만 다수의 시간은 박해의 시간이었구요. 종교의 자유가 없는 우울한 시기였습니다. 해방과 전쟁 후에는 다들 사느라 급급했었고 재건하며 추스르는 시기였다면, 그나마 교회가 성장한 시기는 7-80년대 였습니다. 경제가 발전해가고 교황님도 방한하시는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행사, 89년에 성체대회를 하는 등 많은 행사를 벌였습니다. 당연히 본당에서도 여러 행사를 치뤘구요. 양적인 성장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일입니다. 이런 시기를 보낸 분들이 벌써 3-4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이젠 무엇을 해야하는 시기 같습니까? 당시 7-80년대가 압축 성장을 해왔듯이 교회도 그런 흐름을 탔고, 그로인해 교회도 발전을 이뤘지만 한편으로 갑작스런 성장과 여러 행사탓에 ‘일을 벌여야만 잘 된다’ 고 여기는 인식의 한계도 드러냈습니다. 즉 어떤 면에서는 ‘보고싶은 면만 보게 해 준 시기’ 였습니다. 그래서 교우분들 중에는 그 때처럼 좋았던 시기로 돌아가고픈 분도 있고요. 요즘은 그 때에 비해 너무 재미가 없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게다가 그렇게 열심했던 분들의 기력도 예전같지 않으십니다. 그럼 이제 무얼 해야 할까요?
독서에 나옵니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이 얘기만 들으면 엘리야 예언자는 나쁜 사람입니다. 허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꺼리지만 그는 회개의 삶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한편 그의 금욕적인 말과 행동에 그를 죽이고 맙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며 본인들이 보고 싶어한 면에 대해 따끔한 말을 합니다.
오늘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기념일을 맞이하며 같은 것을 봅니다. 당시 갈멜수도원은 방만해 있었습니다. 이에 성 요한의 개혁은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똘레도의 수도원 감옥에 가두지요. 그러면서 ‘요한 수사, 당신은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소. 고집을 피우지 마시오. 하던 일을 멈추시오’ 라며 강요하면서 곰팡이 피고, 악취 나는 감방에 쳐넣지만 몇 달만에 겨우 탈출하여 대 데레사 성녀와 더불어 수도원 개혁을 성공시키고 결국 수도원다운 수도원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지금의 시기는 ‘질적 성장’ 이 필요한 때입니다. 세상도, 언론도, 교육도, 더욱이 사람들도 예전 같지 않는 욕망에 휘둘려 삽니다. 제가 악마라면 참 좋아라 할 것 같습니다. 알아서들 악의 길로 들어서고 있으니까요. 제대로 살려면 우리의 어떤 면을 개혁시켜야 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