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2020. 1. 7. 오전 11: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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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1요한 4,7-10; 마르 6,34-44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라 알려진 평화를 위한 기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솔직히 어떤 분은 이런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자기 살기 바빠 죽겠는데..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점점 없어져 가는데.. 받지도 못하는데 주는 게 쉽겠느냐?’ 고요. 그래요. 맞는 말입니다. 점차 빡빡해져가는 삶에서 그런 사랑이 나오지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더 절실히 요구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독서처럼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릴 사랑하시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가진 게 별로 없기 때문에 풍족하지 못한 생각, 여유있는 사랑이 많이 나오질 못합니다. 점점 쪼그라드는 것처럼 여겨지지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받아낼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는 사랑받고 있음이 얼마나 젖어있는 지를 봐야 하는데요.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이 푹 젖어있는 사람은 복음말씀처럼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사실 빵을 먹이신 기적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하려던 것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보고 해보라고 시키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헌데 제자들이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인 모양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도 당장에 머리로 계산기를 굴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해오신 사랑은 머리로 해오질 않았습니다. ‘가슴으로 하셨습니다. 갑자기 자녀가 아프다거나, 다쳤다거나,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찌 하셨습니까? 이런 묵상을 하다가 제가 10살 이전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주일날 아팠던 모양입니다. 엄마 등에 업혀 있었는데 어머니가 철문이 닫힌 약국 문을 두드리며 약사님 문 좀 열어주세요라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여러분도 당장에 뛰어들어 뭔가를 하셨습니다. 그만큼 다급하고, 소중한 것을 잃을까봐 두렵고 애처로운 마음이 복합적으로 다가와 여러분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앞서 평화를 위한 기도문처럼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고 싶다면 주님이 주시려는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받고 싶은 사랑아니라 그분을 나를 통해 하시려는 사랑을 말입니다. 먼저 사랑의 원천인 그분을 만나야만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이 자연스레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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