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목요일.

2020. 1. 15. 오후 1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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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주간 목요일. 1사무 4,1-11; 마르 1,40-45

  오늘 말씀은 똑같이 하느님과 백성이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서는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고요. 복음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뭐가 문제이기에 이렇게 다르게 여겨질까요? 분명 시작은 같았습니다. 문제는 배경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과 함께 한다고 여겼지만 실은 그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먼저 독서의 모습은 전쟁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옵니다. ‘하느님의 궤가 뭡니까? 하느님이 직접 주신 십계명의 돌판이 담겨 있습니다. 백성들은 이 사실을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들으셨듯이 그 궤를 빼앗기고 전쟁에도 집니다. 여기에 아니 하느님과 함께 했는데 왜 졌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느님을 믿었다지만 실제로는 각 지파들끼리 갈라졌고요. 우상숭배를 하며 다른 민족의 신을 섬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답송에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실제는 전쟁에서 이기려 하느님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사실을 아시기에, 일부러 궤를 빼앗기에 만들면서 그 곳으로 가셔서 필리스타인 민족의 삶을 피폐화 시킵니다. 즉 당신만의 방식으로 적을 부수신 것이죠. 이는 하느님이 직접 일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탈출기에 나왔듯이 이집트에서 나오고자 하느님께서 10가지 재앙을 퍼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깔려 있어야 하는데요. 안 그랬다가는 본인들이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반해 복음은 치유의 하느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을 하며 당신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병이 나은 것을 사제에게 보여라 라고 하십니다. 공인(公認)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것은 하느님이 명하신 구약의 약속을 인정하며 치유되었음을 받는 확인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지만 실제로는 당연한 바탕의 상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앞서 독서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다하면서, 필요할 때만 당신을 이용하며 찾는 것이 아닌, ‘당신의 방식대로 의무를 다하고 지켜내는 자세가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안된다면 그들이 보여준 이율배반, 자가당착, 표리부동의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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