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내 7일

2019. 12. 31. 오후 8: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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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팔일 축제 내 7

  여러분은 지금 믿는 하느님, 하느님 나라,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하며 자신을 맡기고 있습니까?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 하면, 교우들 중에도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을 다 받아들이려 하기보다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선취하여 받아들이려는 상대주의적인 사고방식 을 갖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대주의의 개념을 말씀드리면 경험 문화 등, 여러 가지 조건의 차이에 따라서 가치판단, 진실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여기는 사상입니다. 즉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고 여기기에 다른 사상도 존중해야 한다고 여기는 논리입니다. 말만 들으면 그럴 듯 합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자.’ 그렇지요? 헌데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가르친 것들이 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성질입니까?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진실의 기준이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까? 간혹 신자들 중에도 이렇게 접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을 읽다보면 내 입에 맞는 구절이 있고요. 어떤 구절은 불편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내 맘에 들면 외우거나 간직하고요. 맘에 안 들면 두 번 다시 안 보려고 합니다. 이른바 성경을 편집해서 바라봅니다. 이건 진리를 바라보는 자세라 할 수 없는데요. 이는 진리를 보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주관적인 인상을 가지고 판단하게 되면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결국 이익과 손해의 계산만 남습니다. 양심에 근거한 도덕적인 잣대나 법률에 근거한 엄격함보다는 내게 편하냐?, 이득이 되냐?’ 만을 따집니다. 당연히 일의 진행을 타협의 방식으로 접근하고요. 협상이 최고의 방법이라 여기며 진리를 따지는 기준이 하향 평준화 됩니다. 의견만 많아지다보니 참되고 확실한 것을 따지고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모든 생각에는 일리가 있다. 타당성이 있다 고 여겨서 결국에는 아무 것도 타당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의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지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안다면 이제 무얼 해야 할까요? 우리가 믿은 것을 스스로 뿌리가 잘리게 만들어 없앨 필요가 있을까요? 신앙도 이러하다면 여기서 하는 말도 공허해질 것입니다. 말에 무게가 없을 테니까요. 성경을 읽어도 그냥 그런 이야기라 여기고요. 성인의 말을 들어도,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도 그냥 그분의 사견(私見)일 뿐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이러면 진리 따위는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의 가르침은 이렇지요.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 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통해 생겨났잖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이 믿음을 지키고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까?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확실한 것부터 챙겨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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