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보통 오늘 같은 날은 김대건 신부님의 업적과 당시 교회사를 살피는 강론을 합니다만, 그런 이야기는 매일미사책에도 잘 나와 있기에 오늘은 복음선포자들의 사명과 숙명, 그리고 역경에 굴하지 않았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나름의 어려운 이 시기를 우리도 잘 헤쳐나가면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먼저 여러분께 이런 것을 여쭤보고자 합니다. '내 안의 본능과 욕구와 이기주의와 싸울만한 용기가 있습니까?' 라고요. 사람이라면 편안하고, 맘껏 누리고 싶고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헌데 신앙인의 삶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실상은 자기 자신과 싸움을 계속 해야 합니다. 이미 이런 걸 실천하라고 배웠습니다. '희생하고, 절제하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 고요. 그런데 우리의 본능은 이것과는 좀 반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진정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다가오는 유혹을 이겨내면서 버텨내는 자만이 참된 진리를 얻을 수 있는데요. 과연 가치있고 존귀한 것을 잘 관리할 수 있습니까?
1독서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은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휘둘립니다. 마음을 뺏깁니다. 우상숭배도 그렇지요. 안 보이는 하느님을 믿기보다 있어보이는 것에 기댑니다. 요사이로 따지면 돈, 명예, 남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자리 등이죠. 있어보이니까요. 그럼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에서는 좋은 것이 뭐가 있는 지 아십니까? 영원함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예를 들지요. 얼마 전, 우린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광화문 앞에서 124위 시복식을 거행했습니다. 왜 거기서 했을까요? 예전 같은 여의도 광장이 없어서요? 아니지요. 광화문 뒤에는 뭐가 있습니까? 경복궁. 임금이 있는 곳입니다. 비록 당시 조정과 임금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을 죽였지만 그래서 자기들이 이긴 줄 알았겠지만, 결국 누가 이겼느냐? 를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이어지지만 당시 왕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까요. 승리를 알려주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에 뭐가 보이십니까?
복음에 나오지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끝까지 견뎌야 하는데요. 하지만 말로는 영원함을 붙잡는다면서 실제로는 순간과 나의 이득을 따지느라 힘든 우릴 보는데요. 김대건 신부님도 잡혀서 문초를 당하시면서 온갖 유혹을 당하셨습니다. '신부를 관두면 너의 유학생활에서 얻은 지식이 잘 쓰이도록 높은 자리를 주겠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많은 보상을 하겠다. 등등의 감언이설을요.
예전 강론을 잘하셨다는 요한크리소스토무스. 황금의 입, 요한 금구라고 불리었던 분이 말한 설교자의 사명을 소개합니다. ' 따라서 우리의 말이 유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권고하는데도 그들이 똑같은 악습을 일삼는다면 그래도 우리는 조언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물을 뜨는 사람이 없어도 시냇물은 계속 흐르고, 물을푸는 사람이 없어도 샘물은 쉬지 않고 솟아오르며, 물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도 강은 그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설교자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없더라도 늘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합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듣는 사람이 없어도, 얻는 것이 없고,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까? 그랬기에 김대건 신부님은 당신의 일을 하고자 순교를 선택하십니다. 하고싶은 것을 먼저 하지마십시오. 이 시대에서 해야 할 것을 먼저 선택하십시오. 그래야 제대로 살 수 있으니까요. 이런 복음이 있잖습니까?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은 곁들여 받을 것이다." 헌데 현실은 나머지 것을 구하려고 얼마나 소득없는 애를 써왔습니까? 그걸 알기에 화답송 후렴은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즉 나를 살릴 분은 당신 밖에 없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있고요. 2독서처럼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처럼 이 과정을 겪을 때 그 열매는 참으로 달콤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