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일

2020. 6. 27. 오후 9:29:09

글자

연중 13 주일. 2열왕 4,8-16; 로마 6,8-11; 마태 10,32-42

 예전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님과 민주화 운동을 한 장일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기도 합니다만, 워낙 재야인사라  아는 사람만 아는 분인데요. 어느 날 이 분이 식당에 갔더니 식당주인이 "제가 요새 장사가 잘 안되는데 어쩌지요?" 라고 묻더랍니다. 이에 장일순은 이런 말을 해줍니다. '누가 하느님인가? 거지에게는 행인이, 장사꾼에게는 손님이 하느님이지. 그런 줄 알고 오는 손님을 잘 모시라고. 자네 집에 식사하러 오는 분들이 자네 하느님이야.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해야 돼. 장사 안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 일절 할 필요없어. 하느님만 섬기면 하느님들이 다 알아서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여러분은 이 말이 와 닿으십니까?

 저번 주 말씀이 하느님을 잘 받아들이면 두려움도 사라진다는 말씀이었지만, 오늘은 그런 하느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 지 알려주시는데요.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고 이뻐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보통 이런 질문에 대다수가 자녀, 배우자 및 가족을 중요시 여긴다고 말씀하지만 사실 가족들과 사이 안 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유심히 관찰해보니 우리가 좋아하고 이뻐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말 잘 들어주는 사람' 이란 것을요.  워낙 자기가 가진 생각이 우선시 하고 그 생각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줘야 이른바 '소통' 이 된다고 여기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꼭 상대방이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내 욕심이고, 바람일 뿐이죠. 우리가 이 신앙을 잘 유지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죽일까? 내가 가진 생각이 오류를 가질 수도 있고,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묻는 자세일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느님이 바라시고 세상이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솔직히 불편한  말씀입니다. 마치 천륜을 끊어내는 말씀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이런 것이 숨어있습니다. '현재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허락해주신 하느님의 큰 사랑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고, 물건을 잃었을 때, 상심에 빠져 우울함으로 일관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현재 내가 살아있기에 이것들을 허락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내 생활을 추스려가자.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 자리들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실은 관리할 뿐이다. 그럴 때 헛된 욕심과 집착은 사라지고, 겸손하게 주어진 삶을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을요.

 그렇습니다. 우린, 우리 자신을 낮추고 잘 죽여갈 때, 실젱로 중요한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식당 주인에게는 손님이, 본당신부님에게는 신자가, 그리고 1독서처럼 엘리사 예언자를 귀한 분으로 알고 대접한 수넴의 여인처럼 극진히 대접할 때 갑작스레 뜻하지  않은 아들을 안겨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가진  자아를 잘  조절할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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