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일. 이사 56,1-7; 로마 11,13-32; 마태 15,21-28
여러분께서는 오늘도 무언가를 얻고자 여기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을 원하십니까? 저도 얻기 위하여 일부러 신부가 되었고 오늘도 미사를 올립니다. 그럼 저는 얼마만큼을 원할까요? 우리가 잘 아는 ‘주님의 기도’ 문구를 빌리겠습니다. 저는 원합니다. ‘일용(日傭)할 양식’을요. 일용할 양식이란, 그날 하루에 필요한 만큼을 말합니다. 각자의 씀씀이와 사정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만큼요. 여러분도 그만큼을 바라십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에겐 욕심이란게 있습니다. 헌데 욕심주머니는 끝을 모르고 분수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을(乙)의 위치에 있다가도, 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게 되면 여지없이 갑(甲)질을 하곤 합니다. 얼마 전, 이 동네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을 힘들게 만들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만난 사건입니다. 그저 직업이 경비원일 뿐인데 그 주민은 그 사람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경각심을 가집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특권의식을 가질 수 있고요. 그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 수도 있음’ 을요. 그럼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요? 낮아짐, 겸손이 필요합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방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지요. 세례는 받았지만 남은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바로 천국을 보장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더라도 온전히 정성껏 해야 합니다. 그냥 입으로만 던지듯이 할 것이 아닌, 온 마음과 정성을 바치고 실천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러할 때, 그 체험은 나의 기억에 새겨지고, 그것이 힘이 되어 힘든 세상을 살아갈 바탕이 됩니다. 지금부터 제가 체험한, 간절히 빌어 얻은 기억과 힘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신부가 되고 나서 첫 본당을 갔을 때 일입니다. 매일 강론을 준비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몸에 체득도 안 되었고요. 그날도 그랬습니다. 기도와 묵상을 1시간 이상 하였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미사 시간은 20분 정도로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정말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아득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섬광같은 메시지가 떨어졌습니다. 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받아적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날 미사는 무사히 끝났고요. 저는 한동안 제가 잘난 줄 알게 됩니다. 그러다 얼마 후, 메시지를 받은 날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시 바라보니 제가 잘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거였습니다. 신자들에겐 분심 없이 미사를 드리게 배려해 주셨고요. 신부인 제게는 당신께서 체면을 유지시켜 주시고 강론도 해결해주신 거였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도구’ 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신 은총의 나날이었습니다. 제게는 그 체험과 기억이 삶의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노력은 하였지만,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그 무언가를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간절하게 어디까지 빌어보셨고 어떤 체험의 기억이 있습니까?
오늘 복음의 가나안 부인은 자신의 딸을 살리고자 제자들에게 눈총을 받고, 예수님에겐 심지어 개 취급을 받아가며 간절히 빕니다.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라면서요. 그러한 자세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마치 사람 사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탁을 한다고 상대방이 꼭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지요.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원칙을 넘어선 감동을 만날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럴려면 1독서처럼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 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킬 것을 지켜가시는지요? 복음처럼 당장에는 굴욕을 당하는 것처럼 느낄지언정, 그 자존심을 내려놓고 간절히 빌고 계시는지요? 2독서처럼 “배척을 받아 세상이 화해를 얻는다” 는 말씀처럼, 비록 나의 세대는 그 복을 못 받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의 어려움을 잘 이겨나가시는지요? 이것이 잘 안되고 있다면 예전에 얻었던 체험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지라도, 그 고마운 작은 체험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