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

2020. 8. 28. 오후 11: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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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주일. 예레 20,7-9; 로마 12,1-2; 마태 16,21-27

 예전부터 우린 이런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공부 잘하고,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부자가 되라 고요. 헌데 요사이 욕먹는 직군들은 우리가 그렇게 꿈꿔왔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름 뒤에 라는 글자가 붙은 사람들. 판사, 검사, 의사, 목사 고위공직자까지요. 그렇습니다. 뭐 하나라도 되면 동네 플랜 카드를 걸었구요. 남 앞에 서는 추앙받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 그렇게 좋은 머리와 배운 지식을 이렇게 쓰는구나~’ 여기서 내가 그 자리에 오르면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이 있지요.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나도 모르는 사이, 갖추어진 시스템에 길들여지고요. 자기도 모르게 물들어 갑니다. 그래서 아마 좀 지나면 이렇게 말하는 시대가 될 지도 모릅니다. 너 공부 열심히 해서 출세해봤자, 결국 저런 사람처럼 될 수 있다?’ 섬찟하지 않습니까? 우린 무엇을 찾아야 할까요 

 홍수와 태풍이 연달아 오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때에,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과연 인간이 가진 이성이 항상 옳고, 좋고, 선한 판단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잠시 노자라는 책 73장을 인용합니다. 하늘이 만든 법과 인간이 만든 법의 차이를 말하는데요. 하늘의 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기어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 만든 법은 촘촘해서 물샐 틈 없어 보이지만 결국 빠져나갈 놈은 다 빠져나가고요. 하늘이 만든 법은 마치 십계명처럼 몇 개 되지 않아도, 여기에 걸리지 않는 놈은 없다는 뜻인데요. 그 오래된 계명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보노라면 사람이 가지고 산다는 지혜에 대해 궁금증을 가집니다. 정녕 사람은 지혜로울까요? 이사야서 29장에 있는 내용이지만 나중에 바오로가 고린토 1장을 통해 인용한 글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버리리라 나름 지혜롭다는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저 뒤에 보이는 십자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구원으로 다가옵니까? 아니면 피하고 싶습니까? 저 모습이 과연 지혜로워 보입니까?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3번의 수난 예고를 하신 내용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인 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러셨습니다. 민주주의처럼 투표를 통해 제자를 선발하지도 않았고요. 계획을 먼저 일러주시며 내가 이렇게 할꺼니 따라와라 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역사 2천년간 수많은 이즘을 봐왔고요. 그에 따른 한계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순명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예수님 당신도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달라 는 기도는 하셨지만, 결국 하느님의 방식을 따르면서 구원을 제공하십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영원한 생명을 몸소 보여주시는데요.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이 어떤 분임을 알았기에, 오늘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을 받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정적으로 들립니다만, 뒤에 이런 내용이 나오죠.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둔 주님 말씀이 심장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현실은 비록 고달파도 당신의 부르심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자기의 처지를 말합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결국 자기를 살린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독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현실에 노예가 되지 말고, 하느님의 정신 대로 사는 내가 된다면, 남 부러울 것 없는,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로운 나다운 나로 살 수 있는데요. 예전보다는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고, 가진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실제로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과는 좀 멀어진 느낌이 듭니다. 루카 복음 23장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 나름 똑똑하다는 우리가 했던 일이 결국 헛똑똑이였다는 결말로 전락되지 않길 바라면서 주님의 지혜를 잘 받아들이고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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