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토요일. 코헬 11,9-12,8; 루카 9,43-45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수 많은 사랑의 정의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상대가 가려는 길을 이해해주고 잘 가도록 독려해주는 것이겠지요. 내 방식대로 해대는 사랑이 아니라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예전 본당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납니다.
60대를 넘으신 장대한 기골의 남자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남성 구역장도 역임할 정도로 신앙심도 좋으신 분입니다. 헌데 젊은 날 사고를 당하셔서 왼팔과 오른 다리를 잃고서 오른팔로 목발 하나를 짚으시면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다니는 분이었습니다. 헌데 그동안 그분을 쭉 지켜봐 왔다면서 어떤 분이 제게 면담을 해오십니다. 내용인즉슨 ‘그 형제님을 위해 의수, 의족을 해드리겠다’ 고요. 처음 들을 때는 ‘아~ 그분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시려는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듣고 있자니 좀 이상했습니다. 실상 진짜 이유는 그 형제님을 위해서 의수, 의족을 해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형제님을 지켜보는 자신의 시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기에 그걸 해드리겠다는 것이었는데요. 즉 자기가 바라보기 불편하다는 것이지요. 이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증을 해주시겠다니 감사한 뜻을 듣고 그분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분들 중에 그걸 일부러 착용하지 않는 이유는 아십니까?’ 장애인들의 사정을 당연히 모르는 그분은 아무 답변이 없습니다. 실은 많은 장애인분들이 착용을 안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 여름엔 너무 덥고요. 겨울엔 너무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착용하다 보면 속에 땀이 차고요. 피부가 닿는 부분에 물집이 잡히거나 쓸리고요. 피부와 비슷한 실리콘 재질로 만들지만 그게 영구적인 게 아니라, 몇 년 못 간다는데요. 결국 기증에 대한 내용을 전해드렸지만 역시나 거절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은 사람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라며 주님은 당신이 가고자 하시는 길을 가려고 말씀의 예언을 이루려 하시지만 이를 지켜보는 제자들의 마음은 불편합니다. 다들 주님을 따라갔긴 했지만 뭔지도 모르고 자기 방식으로 갔던 셈인데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이 따라옵니다. ‘과연 난 주님에 대해 제대로 알면서 당신을 따르려고 하는 것일까?’ 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