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일.

2020. 9. 26. 오후 5:19:03

글자

연중 26주일. 에제 18,25-28; 필리 2,1-11; 마태 21,28-32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 삶이 있겠지만 제가 본받고 싶은 삶이 있는데요. 아마도 제가 가려는 길과 여러분이 가려는 길이 그다지 다르지 않는 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같은 분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았고 같은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받아왔으니까요. 그러면서 같은 방향을 향해 가려는 이 길은 서로를 살려주는 삶으로 이어져야 할텐데요.

  프랑스의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나중에 재속 사제회인, 프라도회를 세우는데요. 그분의 저서인 참다운 제자에 보면 사제의 모습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쁜 신부’, ‘좋은 신부’, ‘완전을 지향하는 신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쁜 신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캔들을 일으키며, 자신이 죄 중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입니다. ‘좋은 신부는 어쩌면 여러분이 바라고 있던 사제상의 모습입니다. ‘신부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교회의 계율을 잘 지키고,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치며, 대죄와 스캔들을 피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착한 일을 하는, 한마디로 말해서 문제될 것이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는 완전한 신부, 더 정확하게 말해, 완전을 지향하는 신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을 더 가까이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힘을 기울일 열의를 갖고 있으며,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의 가난과 온화함, 사랑, 영혼에 대한 열성, 그리고 고통과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을 본받기를 원하는 사제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사제와 완전한 사제를 이렇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좋은 사제와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사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좋은 사제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 우리 주를 더 가까이 따라가서 그분을 본받으려고 진지하게 힘쓰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마음을 쓰며, 세속과 자기 동료들의 취미에 굳이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완전해지려고 애쓰는 사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긴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그분을 가장 충실하게 본받으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완전을 지향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지,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처럼, 착하기만 한 상태에 머물라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거룩한 사제는, 착하기만 한 신부들 백 명보다, 더 많은 이를 회개시키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만든다.’. 이 이야기가 그저 신부님들에게만 해당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데요.

  오늘 복음에는 아들 둘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을 시키는 비유를 들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이 둘 가운데에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우리가 알듯이 처음에는 일하러 가기 싫어했지만 생각을 바꾼 맏아들입니다. 대다수가 그렇지요. 쉽고, 재밌고, 게다가 뭔가 이득이 생기는 일을 하길 바랍니다. 남이 알아주길 원하고요. 명분도 그럴 듯하면서 치적사업이 될 수 있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일은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당장 결론이 나는 효율적인 일도 아니고요. 대부분이 누가 시작한 일을 과정 중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며, 게다가 남이 잘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1독서 말씀처럼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세상이냐? 라고 쉽게 볼멘 소리를 할 만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을 실천할 때 우린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데요. 2독서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단순히 간직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데요.

  사랑하는 이문동 본당 교우 여러분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어렵기에 대다수가 눈앞에 떨어지는 이익에 눈길이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눈앞의 이익만 쫓다가 결국 살아가야 할 세상이, 마치 사막을 걷는 듯한 건조한 삶으로 이어질텐데요. 우린 남들처럼 살지 않기 위하여 교회에 모입니다. 더 완전한 선함을 추구하고자 살았던 주님과 성인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때 내가 사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