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목요일.

2020. 9. 24. 오후 10:07:44

글자

연중 25주간 목요일. 코헬1,2-11; 루카 9,7-9

  대다수 분들이 저보다 연세가 많으시기에 여쭤보겠습니다. ‘이만큼 살아보시니 어떻습니까? 삶에 정리가 잘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점 때문에 가슴 아프십니까? 아직도 못 다 이룬 한 때문에 답답하십니까? 젊은 것들이 치고 올라오는 게 불안하고 힘겨우십니까?’ 우리가 주먹을 쥐면서 세상에 태어나듯 그야말로 욕망덩어리로 살아옵니다. 내가 원한 것이 이뤄져야 하고요. 눈엣 가시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잘라내고, 베어내고, 쳐내지만 마치 잡초가 올라오듯 계속 문제가 터지면서 내 앞길을 가로막는 듯 여겨집니다. 그렇습니다. 삶이 그렇지요. 매번 터지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자꾸 성가신 문제는 돋아나고요. 방해꾼들은 내 발목을 잡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변에, 가족 중에 이웃 중에도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음에 나온 헤로데 영주가 그렇습니다. 그의 아버지 헤로데는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학살시킨 것은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가 자신의 제수씨와 결혼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한 세례자 요한을 죽이면서까지 막장 결혼을 한 이유는 제수씨였던 헤로디아가 정통 유대인 왕조인 하스몬 왕조의 공주였기에 나름 정통성을 세우려는 의도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지요. 그가 막장 결혼을 하건, 자기 자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건 간에 지금은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가 죽인 세례자 요한, 예수님은 지금도 사람의 기억에 남아있고 더 나아가 믿음의 시간으로 이어지지만 그가 애써 벌였던 시도와 노력은 다 물거품처럼 사라졌는데요.

 독서에 나오지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차지 못한다.” 는 말은 아무리 자신의 감각을 채우려 애를 써도 시간이 지나면 촌스럽게 보이고 괜한 짓 했다여겨지는 것은 왜일까요? 이제 이만큼 사셨으니 이제 뭐가 보이십니까? 제대로 된 것을 붙잡아야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