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간 목요일. 에페 6,10-20; 루카 13,31-35
여러분은 싸움 잘 하십니까? 갑자기 신성한 강론시간에 왠 싸움 이야길 할까? 의아해 하실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평화, 화해,를 잘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만 정작 그게 잘 되려면 ‘자기와의 싸움’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느냐?를 보셔야 하는데요. 실상 자기가 느낀 감정을 현실로 제대로 추스르기를 어려워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트 직종이 많다는 강남, 여의도 지역에는 은연중에 ‘심리상담소’ 가 많은데요. 그만큼 자기 스스로 해소하고 있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성당에 나오는 이유는 마치 병원에 가듯, 헬스장에 가듯,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설사 다치더라도 잘 치유하게끔 하려는 건데요.
오늘 독서가 그렇습니다. 나오는 단어들이 하나같이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하느님의 무기, 무장을 갖춤, 갑옷, 믿음의 방패, 성령의 칼” 등이 나오죠. 괜히 이런 표현을 쓰는게 아닙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무장되어야’ 현실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성무일도 끝기도에 나오는 베드로1서 5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우린 성령의 힘을 입어 자신을 지키고, 악한 것들과 잘 싸워야 하는데요. 복음에도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걱정한 몇몇 바리사이가 찾아와 귀띔을 해줍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여길 떠나시라” 고요. 어찌보면 친절한 말 같지만 실제로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대처하는 나 자신에 선택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도망가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본인의 소명을 아셨습니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사이 나오는 독서, 복음 내용이 꽤나 비장합니다. 이유는 이제 전례력상 연말이 되고, 죽음을 미리 경험하는 위령성월을 맞이하기 때문인데요. 잘 살기 위하여 자신을 잘 죽이고, 잘 싸워내면서 이 현실을 잘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