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간 금요일. 필리 1,1-11; 루카 14,1-6
요사이 상영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요즘 사람들의 경향을 보곤 합니다. 가끔 종교적인 부분을 건드리는데요. 올해 개봉한 ‘문신을 한 신부님’ 이라는 작품을 보면, 신부님이 되고픈 소년원 출신 범죄자가 출소 후, 가야 할 목공소에는 가지 않고 근처 성당에 갔다가 본인을 신부라고 속입니다. 당연히 성경 해석도 자기 맘대로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인간적으로 교우들에게 다가가고, 갈등이 생긴 곳을 치유하고, 진솔함을 보이면서 본당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결국 신분이 발각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또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는 성직자와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나오지만, 오히려 안드로이드가 더 사람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모습으로 그리는데요. 여기에 감독들의 의도는 이렇답니다. ‘진짜가 진짜처럼 살고 있느냐? 아니면 가짜처럼 구느냐?’ 는 건데요.
오늘 복음에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은 대립합니다. “안식일이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배운 것에 발목 잡혀 사는 사람’ 을 보여줍니다. 알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못한 결과를 내는 걸 보면서, ‘과연 배운 학식이 사람들을 어떻게 돕고 있느냐?’ 를 보게 하는데요. 요사이 사람들의 화두는 ‘공정과 평등’ 입니다. 물론 사람이 사는데 완전히 평등하진 않지요. 그래도 기회의 균등을 원합니다. 사람을 먼저 살리길 바랍니다. 처음 한국교회가 천주교를 받아들인 계기도 ‘신분철폐, 만민평등사상’ 을 보면서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는 간절함이 이 신앙을 받아들이게 했지요. 그런 세상이 끝나고 민주주의 세상이 되었지만 오히려 세상은 규제의 막을 더 치고, 그들만의 리그를 폅니다. 돈이 있어야 낄 수 있고요. 아는 누군가가 있어야 들어갑니다. 세상 창조 때 자유로움이, 시간이 지나며 각박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예전 중국의 진나라 말엽 활동했다는 황석공이 쓴 ‘소서’ 에 보면 사람이 갖춰야 할 5가지 근본 소양이 나옵니다.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우주만물을 포용하는 도(道)’ ‘사람의 사상이나 철학을 통해 도를 구현하는 덕(德)’ ‘자신보다 못한 미물을 돌보는 인(仁)’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구별하는 의(義)’ 마지막으로 ‘한 사회를 규정하는 법칙인 예(禮)’ 가 있는데요. 제일 처음 언급한 도(道)가 자유롭게 알아서 분별해가기에 제일좋은 첫째라면, 마지막으로 언급한 예(禮)는 제일 끝 순위으로써 ‘제발 그것만이라도 지켜달라’ 는 뜻이 되는데요. 오늘 독서에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여쭙습니다. 내가 배운 것들이 과연 사람을 돕고 살리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