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필레 1,7-20; 루카 17,20-25
신학교나 수도원에서 서로에게 제일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성소동기'입니다. 어떻게 부르심을 받아 들어온 것인지 궁금하면서 막상 들으면 사례의 케이스의 다양함에 놀라곤 하는데요. 듣고 보면 참으로 다채롭고 다양합니다. 비록 같은 곳에 모였지만 서로 다른 인생사 속에서 회사나 학교, 취미 동아리처럼 단순하게 성적이 좋거나 성향이 비슷해서가 아니라는 점이 놀랍던데요.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이와 반대의 생각을 하지요. '어떠어떠한 점이 비슷하고, 어느 정도의 레벨이 맞아야 한다' 면서요. 생각보다 우리가 참으로 따지길 좋아하고 고리타분한 건데요.
복음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대로 오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분, 우리의 차원과 다름을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가 예측한 예상범위에서 모든 것이 움직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사람이건, 일이건 말이죠. 그래야 불안하지 않으니까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불안정함, 불안함입니다. 여기에 당신은 오히려 그 방법을 선택하시며 우릴 흔드십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한 요사팟 주교님의 집안은 '장사하는 상인' 이었습니다. 상인들은 모든 것을 계산하며 이윤을 극대화 하는데 열을 올리지만 그분은 영혼을 구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영혼을 구하고, 얻기 위하여, 살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셨을 것입니다.
독서에 바오로는 감옥에서 만난 오네시모스를 부탁하며 "그대의 승낙없이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처럼 자발적 선택이 되길 희망합니다. 우린 자발적으로 주님 앞에 모여왔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값지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때문이지요. 마치 밭의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걸 털어내며 그걸 사듯이, 내 예상과 다르게 다가오실 수 있는 주님의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자신을 평소에 잘 열어놓고 마주 대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