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수요일. 히브 7,1-17; 마르 3,1-6
가끔 우린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내가 배워왔고 경험한 것이 아니면 다가온 것들에 대해 부정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습득해온 것이 전부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았기에 이득도 얻었었고요. 삶의 지탱이 되어주기도 했기에 이를 고집스럽도록 집착해갑니다. 하지만 좀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상황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만 되어가진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오히려 나의 고집이 나를 딱딱하도록 굳게 만드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그럼 어찌하면 좋을까요?
요사이 읽고 있는 히브리서의 집필 동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봐야 여기서 제사적 관점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언지, 언제적 사람인지도 모르는 멜키체덱을 거론한 이유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필 시기는 서기 70~80년 경인데요. 이 시기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초보적인 교리에 머물러 있었고요. 선행과 사랑 실천에는 등한시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른바 신앙의 권태기에 머문 시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 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거 하느님과 자신들을 연결해주던 대제관이 있었고, 이 제관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 지를 알려줬으며,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살았다는 표현에서 우리가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살지 말고,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본받아 닮아가자는 주장을 펴는데요. 그랬기에 복음에서처럼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라는 심적 상태를 보여주십니다. 참된 말씀을 듣고 실천을 보았어도 그저 심드렁하고 굳어버린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안타까워하는 예수님의 상태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을 지키고 싶었기에 그랬을까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냐?” 라는 질문에 우리의 상태를 대입해봐야겠습니다. 그들은 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닫아버렸을까요? 무엇이 무너진다고 여겼기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를 내쳤을까요? 가끔은 자기가 배워왔고 경험한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결정의 때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했었나요? 자기 것을 지킨답시고 계속 마음의 빗장을 걸어놓고 있다가, 여태껏 소중히 모아온 귀중한 것들이 썩어나가는 때를 만나기도 합니다. 새로움의 물길을 받아들이고 환기를 시키며 자기 것을 바라본다면, 당연히 예전의 것도 살리면서 원래 가진 본(本) 정신을 살리는 때가 되는데요. 우리가 배웠던 수 천년 동안 하느님을 따라왔던 사람들의 가르침과 정신을 다시금 복습해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복습은 그저 옛것을 따르는 답습이 아닌, 새로움으로 갈아입으려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