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일. 레위 13,1-46; 1고린 10,31-11,1; 마르 1,40-45
우리는 어느 정도 아픈 사람들입니다. 각자 가진 지병(持病)이 있습니다. 누구는 약을 먹거나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몸이 아픈 이거나 또는 상담이나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한 마음이 아픈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그리 건강한 편은 못됩니다. 서로가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이런 면을 갖고 삽니다. 물론 자기의 아픈 면을 감추고 싶습니다. 알려질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구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이가 그랬습니다. 그동안 나름 여러 방법을 써봤겠지만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매달려봅니다. 당시에도 전염병이 창궐했던 때에 1독서처럼 ‘부정한 사람’ 의 취급을 받으며 낙인찍힌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을 겁니다. 이런 때에 그는 용기를 내어 당신께 나아갑니다.
“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믿었나 봅니다. 그랬기에 이런 말을 하지요. “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당신께서 저를 살리실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으시다면, 저는 살 수 있습니다.’ 라는 자세로 매달립니다. 과연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를 하십니까?
이런 점은 기도를 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요. 과연 기도를 할 때.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믿음의 신뢰와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시는지요. 가끔 기도한다는 분들을 보면 머리로 하는 경우를 봅니다. 머리로 기도를 한다는 말은, 자기 식대로 프레임을 짜놓고 그 틀대로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문을 외워도 형식적으로 하고요. 자유 기도를 하더라도 주님께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매달리기보다는 한 번 던져보는 스타일로 합니다. 빎의 자세는 아쉬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나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고, 노력만 갖고 안됩니다.’ 라는 것이 깔려 있다면 내가 바치는 기도는 하늘에 닿길 바랄 것이고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자기의 삶에 정성을 다하고 하늘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겸손된 자세가 될 수 있는데요. 우리가 바치는 기도가 값싼 기도가 되지 않으려면 치유를 받은 그들처럼 정성 어린 자세가 잘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