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일. 탈출 20,1-17; 1고린 1,22-25; 요한 2,13-25
예전 성지순례를 하러 이탈리아에 간 적 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본원인 아씨시에 갔는데요. 거기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리고자 가시가 없는 장미꽃밭, 둥지를 떠나지 않는 비둘기 2마리가 실제 있는, 성인전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유독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으니 펼쳐진 성인의 수도복이었습니다. 다 헤지고, 여러 번 누더기처럼 기워입은 흔적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사셨구나’ 하지만 이내 그 감동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수도복이 전시된 곳 아래층에는 성물을 파는 큰 성물방이 있는데요. 거기에는 온갖 화려하고 비싼 성물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비루한 수도복과 대비되는 현장을 보며 ‘가난하게 살았던 성인 한 명이 있었기에 막상 수도원은 그 덕택으로 배부른 삶을 사는구나’ 라는 탄식이 나왔는데요. 제가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움켜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꺼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십계명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살던 이들에게 자유의 삶을 주셨는데요. 이에 걸맞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계명이었습니다. 지킬 것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끔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갑자기 폭력적인 예수님의 모습에 불편한 대목일 수 있습니다. 허나 하느님의 것을 지키려는 주님과, 불필요한 것에 일부러 얽매여 사는 이들에 대한 따끔한 가르침이었는데요. 그러면서 당신의 몸을 성전에 비유하시지요. 그러면서 나중에 제자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교회란 그럴듯해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요.
있어 보이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진정 있는 것을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은 물건도, 명예도, 업적도 아닙니다. 그건 바로, 주님이 살아오신 삶을 살아가면서 터득할 때 이뤄지는데요. 그래서 2독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지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인내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요구되고요. 실상 많은 이들이 중도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요. '성인은 쉬운 길을 쉽게 간다. 하지만 평범한 이는 쉬운 길을 어렵게만 간다. ' 이제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실로 나는 지킬 것을 잘 지키며, 사람들이 말하는 어리석음에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에 내게 명하신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요. 매일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동안 현명한 대답을 하는 시간이 되길 빌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