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사도 4,13-21; 마르 16,9-15
우화를 잘 만들었던 인도의 안소니 드멜로 신부님의 짧은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가 있습니다. 길을 가던 어떤 부인이 모녀를 보다가 말합니다. ‘어휴~ 댁의 아기가 정말 예쁘네요’ 그러자 젊은 엄마가 대답합니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 애 사진을 보셔야 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실재를 접하지만 오히려 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더 진짜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요. 우리가 진정 봐야 할 것은 뭘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비슷합니다. 복음에는 예수님을 보았던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고요. 베드로와 요한의 기적을 보았지만 율법학자들은 이를 알고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합니다.” 그동안 배운 교리만을 복습하고 되새겼던 우리에게 좀 민감하면서 깊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들은 늘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믿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길명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고려대 명예교수이지만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이고요. 신흥종교에 대한 전문가이며 그들이 좋은 종교가 되게끔 강의도 해주는 분입니다. 이분이 연구에 의하면, 예전에는 억눌리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신흥종교로 갔지만 요새는 아니랍니다. 요사이는 많이 배운 중산층 부녀자나 학생들이 많이 간답니다. 그들도 그런 곳임을 알고 있답니다. 특히 젊은이가 많이 빠지는 이유는 지불해야 할 댓가보다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입니다. 3포, 5포 시대를 사는 현실의 불안함에서 기성종교와 달리 신흥종교는 대면적이고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게끔 해주기 때문이라는데요. 그렇다고 대충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우리 같으면 간단한 기도문을 읽고 미사에 수동적으로 따르지만, 이들은 직접 호소하고, 청원하고 박수를 치는 등, 며칠을 금식기도를 하면서 강렬한 분위기로 그들을 자극합니다. 이와 달리 기성종교는 점잖지요. 그러면서 도움을 주는 데는 느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이런 것을 봅니다. 율법학자들의 기존 종교와 예수님을 통한 신흥 종교가 마찰을 빚습니다. 분명 그들은 사람이 낫는 기적을 보았지만 오히려 이를 외면합니다. 그동안 쥐고 있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요. 대단한 현실주의자이죠. 이에 반해 초월의 영역으로 들어간 제자들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2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자, 교의 신학 등. 믿고 따르는 교리를 가르쳐왔습니다만, 반면 가끔 우리의 상식을 넘는 더 선한 영역에 대해서는 닫힌 시각을 가질 때가 많았는데요. 부활을 맞이하며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렵니까? 그리고 쇄신하는 교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