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사도 2,36-41; 요한 20,11-18
살면서 뭔가 잃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물건이건, 사람이건요. 물론 없어도 그만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었고요. 잃고 나서 후회하신 적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그런 경향이 있지요. 있을 때는 몰랐었는데, 잃고서 그 상실감에 몸서리 치는 경우를 말이지요. 하지만 그게 꼭 안 좋은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 마리아가 그럽니다. 예전 삶에서 변화된 그녀가 예수님만 보고서 살았었지만, 이제 바라볼 곳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절망감에 그냥 울고만 있습니다. 자신의 슬픔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인 것이지요. 저도 예전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3학년이던 때에, 저를 신학교에 추천해주신 아버지 신부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연세가 그때 나이 마흔 넷이셨습니다. 지금의 저보다도 젊으신 나이였지요. 사고사로 가셔서 명동성당 소성당에 안치되셨을 때 평소 감정 표현이 없던 저였었지만, 꺼이꺼이 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광경을 보던 제 어머니는 저를 끌어안으시며 ‘이제 너는 누구를 기대고 사니?’ 라며 같이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홀로, 제 속을 털어놓을 그 누군가가 없어졌을 때 느끼는 허전함은 말로 다 못하지요. 인간적으로는 슬펐지만 세월이 지나 홀로 지내면서 강해진 면도 생겼습니다. 사목자로서 사는 게 남이 보는 것처럼 만만치 않음을 느낍니다. 가끔 ‘아버지 신부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화가 날 때도 많았을텐데..’ 라고 여기죠. 그러면서 마음을 잡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의 예수님은 다행스럽게 마리아에게 다가가십니다. 슬픔에 빠져 그분이 자기가 알던 예수님인지조차 모르는 상실감에 휩싸였지만 오히려 그녀는 나중에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통해 그분에 대한 사랑의 절실함이 얼마나 컸었는지를요. 주님이 없었을 때 느꼈던 빈 공허감이, 오히려 내가 정작 무엇을 하며 살았어야 했었는지를 알게 되었을테니까요. 그녀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 기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 예수님을 잃어봤었기에 그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고마웠던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여러 판단과 행동으로 인해 아까운 사람과 물건 등을 잃어봤을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하지요. 내가 정작 채워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주님이 얼마나 내게 필요한 분인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시간을 맞이하며 이 소중함을 잘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