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일. 생명주일.

2021. 5. 1. 오후 6: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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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5주일. 생명주일. 사도 9,26-31; 1요한 3,18-24; 요한 15,1-8

 요사이 여러분의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요. 가장 관심이 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온통 관심이 가 있는 그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가요?’

  오늘 복음 말씀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 나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니다. 머물러라, 머무르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과연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시길래 이러실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 주님, 당신께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그 어떤 길로 우리 안에 존재와 생명이 흘러들었겠나이까?’ 이 말의 뜻은 주님의 창조사업은 항상 현재성을 띠기 때문에, 창조사업이 그저 창세기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 활동하시며 그 힘이 나를 움직이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은 여전히 나를 부르시고, 함께 하시길 바라시고, 당신의 품과 가르침 안에서 답을 찾기를 바라시는데, 실상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생각에 갇혀 살길 바라지요. 그게 올바른 것인지 아닌 지는 나중 문제로 제쳐놓고 말입니다. 즉 현실에 벽에 스스로를 가둬놓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데요여기서 자신을 위한다는 시간이 오히려 자신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봐야 합니다. 결국 나 자신을 채워가야 하는데 정작 채워나갔다는 도구란 뭐였을까? 그동안 다른 것으로 채워보려 했지만 오히려 더 갈증나고 공허했던 때가 있었다면 이유가 뭐였을까요?

 1독서의 바오로, 옛 이름 사울은 같은 유대인 민족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실상 그가 이런 사실을 모르면서 감행하진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의 고독하고도 외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 두려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서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고 체험한 가르침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 머무르며 감행했다는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젊은 친구들과 본당에서 복음 나눔을 합니다. 그 나눔 안에는 현실이 들어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지요. 자신도 주식을 샀다. 그런데 주식 상황이 이렇다 저렇다 따위를 신부인 저에게 스스럼 없이 말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해해주길 바라지요.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여봅니다만, 실제로는 신앙인인 우리 마음 안에 결국 무엇이 들어차 있었던가?’ 를 보게 하는데요. 주님의 가르침에 힘이 느껴지십니까?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 이유는 무얼까요? 다시 처음 드렸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의 관심 사안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합니까?’ 이 불안함을 타개할 수 있는 체험과 깊은 믿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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