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화요일. 사도 16,22-34; 요한 16,5-11
살아있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살아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누구는 평범하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요. 누구는 구차함을 뒤집어쓰면서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얻으려고 아부와 술수를 꾸미며 살기도 하고요. 또 누구는 자기 책임에 따른 문제가 생기면 자결하거나 그런 시도를 합니다. 독서에 나온 간수가 그랬습니다. 자기 책임에 따른 일이 벌어지자 자결로써 일을 끝맺고자 합니다. 어쩌면 그런 큰일에 대한 마무리를 그렇게까지 하면서 징계를 피하고 자기와 남은 가족들을 지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시도와 죽음들은 있어 왔고요. 한편으로 이를 미화시키키도 하고 승화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이 바뀌고 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꼭 그런 결론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봅니다. 여기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주님의 죽음과 세상과의 작별 방법을 바라보게 되는데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의 처신 방법과 다음 단계로의 연장선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주셨기에 보이지 않는 지혜와 여러 은사가 담긴 성령이란 존재를 알려주시고 우리에게 이를 선사하십니다. 이로 인하여 오히려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는 자립성(自立)을 길러주시면서, 당신은 육신적으로는 떠나셨지만 영원히 떠나신 것은 아니셨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세상을 열어주시려 하셨는데요. 그래서 독서의 간수도 다행스럽게 자기의 생각에 함몰되지 않았기에 구원을 만나게 되었고요. 그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도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휩쓸린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 제가 신학생 시절, 몇 년 위 선배 하나가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졌다며 이젠 자신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야 한다면서 학교를 떠난 사태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담당 신부님은 ‘물론 사정은 어려워졌지만 그 선택이 최선은 아닐 수 있다’ 며 조언을 하셨지만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과연 무엇이 효도였을까요? 갑자기 드는 사안에 자기를 맡기지만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느리고 천천히, 당신의 영인지 가늠하면서 살펴가는 여러분이 되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