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일

2021. 6. 21. 오후 6: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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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2주일. 38,1,-11; 2고린 5,14-17; 마르 4,35-41

 가끔 우린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라고요. 역사적으로 모든 발전은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출발했고요. ‘다 안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발전은 종막을 고했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 호기심을 갖고 시작합니다. 엄마~ 저게 뭐야?’ 하면 엄마의 대답을 듣고서 흥미가 생겨난 아이는 거기에 궁금증을 첨부한 탐구력을 더해 지대한 공헌을 한 발견가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안다고 여기는 순간, ‘다 아는 데거기에 무슨 발전이 있고, 기대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질문을 가져야 하고 던져야 합니다. 모르는 데 아는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가식이요, 허영이까요. 질문이 귀찮고 힘들다고 문제를 덮어버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는 비겁한, 용기없는 태도니까요. 그래서 솔직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왜냐고요? 우린 여전히 하느님, 예수님을 아직 다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어 탐색하다, 쫓다라는 단어, ‘suchen’ (쑤흔)이 있습니다. 원 뜻은 냄새를 맡으며 자취를 쫓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사냥개가 뭔가를 쫓고 찾듯이 말이죠. 연구가가 자신의 분야에서 뭔가를 찾는 이유가 뭘까요? 이미 자신이 발견한 것 이면에, 위대한 무언가가 또 있음을 직감하기에 호기심을 갖고 찾습니다. 이렇게 연구가가 자신의 분야에서 여전히 연구를 진행하듯 우리의 신앙도 하느님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찾는 호기심을 감추지 말아야 하는데요. 여러분도 그러신지요? 아니면 다 아는 분’ ‘이미 검증이 끝난 분입니까?

1독서의 하느님과 욥이 대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엔 안 나왔지만 욥이 하느님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자 당신이 답하십니다.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렇지요. 우린 그런 걸 본 적 없습니다. 다만 그럴 수 있겠구나 여겼지요. 복음에는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을 보고 탄식합니다.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자기가 이해한 차원을 넘어선 분을 만나며 답을 내질 못합니다. 그런 것을 만난 2독서의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지요.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나는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며 가끔 주님에 대해 답변을 내셔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과 더 가까워 질 수 있고요. 예전보다 나아진 나 자신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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