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화요일
예전 2006년 때 일입니다. 당시 성당 식복사 자매님이 있었는데요. 이분 아들 중 한 명은 발에 물갈퀴를 달고 수영하는 ‘핀 수영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수영계는 좁기 때문에 수영 선수와 그 부모의 상황을 그들끼리는 알고 지내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박태환 선수가 200m, 400m, 1500m 금메달 3관왕을 달성했는데요. 그 소식을 들으며 식복사 자매는 음식을 준비하며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하... 태환이 엄마는 좋겠다..’ 그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세상에는 노력한다고 다 되지는 않는구나,, 천재는 하늘이 낳아주는구나’
예전에는 자기보다 뭔가 잘하는 사람을 인정해주고, 칭송하고 그것보다 못한 자신을 겸손하게 처신하며 자기만의 무언가를 했는데요. 요사이 아이들은 집안에 1~2명이라 그런지 상대가 자기보다 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더욱이 가까운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생기면 잘난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질투심과 자신이 더 잘났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힌 아이들이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상대를 깎아내리려 혈안이 됩니다.
독서의 아론과 그의 누이 미르얌은 하느님께 혼쭐이 납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이 말만 놓고보면 맞는 말 같지만 실은 하느님과 가까운 모세에 대한 질투심이 들어있지요. 그러다 결국 누이 미르얌은 악성 피부병에 걸리는 화를 입습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도 물 위를 걷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되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물위를 좀 걷지만 이내 바람이 불자 두려운 마음에 빠집니다.
작곡가 베토벤의 제자인 브룬스비크는 베토벤을 이렇게 말했답니다. “천재들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그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나타난다. 천재가 없었다면 얼마나 삶이 빈곤했을까?” 평범한 우리가 천재들을 본다고 나도 그처럼 대등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보면서 내 수준이 더 높은 수준으로 한 단계 올려지는 직접적인 이득을 얻습니다. 우린 그들과 다르니까요. 괜히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나름의 위치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으니까요. 우린 그저 우리 할 일을 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