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목요일. 민수 20,1-13; 마태 16,13-23
지금의 상황이 마치 광야에 놓여진 이스라엘 사람과 같아 보입니다. 내 마음데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없으니 하느님이 계신 지 모르겠고요. 그분이 이 상황을 왜 그냥 놔두시는 지 알 수도 없기에 불평은 당연스레 나오고요. 내가 믿어야 하는 이유마저도 보이지 않아서 현실을 도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때인데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옳았습니까?’ 왠지 내가 ‘피해자’ 라고만 여겼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내가 세상을 사는데에 올바른 방향으로 살려고 진정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때가 많았고요. 내가 하고픈 것에만 취해있었음을 바라봅니다. 본능에 충실하고, 욕망을 만족시키며 남과 비교하면서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려 했던 지난 날들이요. 결국 거기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했나요?
이제 나로 점철된 세계관을 바꿔가야 할 때입니다. 솔직히 그동안 이런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예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고요. 허나 우린 그런 관점을 좋아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랑 안 맞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나만 바라보는 사람은 나 이외의 세상을 읽지 못합니다. 당연하지요. 자신 안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세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기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메카니즘을 알면서, 움직이는 구조원리를 알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치 핸드폰은 하나씩 다 갖고 있지만, 그것이 움직이는 작동원리는 모르면서 자주 조작하는 단축 키, 몇 개 만 알면 다 된다고 여기는 경우처럼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베드로가 고백한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들 각자 자신의 삶에서 주님을 체험합니다. 하지만 각자가 체험하기에 다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에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각자의 체험이었지만, 주님이 이러한 분이라는 공통분모 같은 것을요.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뭉쳐주고요. 개인적인 신앙이지만 서로를 결속시켜주는 힘이 되어주는데요. 그것을 찾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