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일. 탈출 16,2-15; 에페 4,17-24; 요한 6,24-35
어려운 시기에 기어이 우리가 모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에 ‘종교단체가 욕먹지 않게 모범을 보여야지~ 방역에 힘을 보태며 신자들이 모이지 않도록 말해야지’ 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 이런 것도 봅니다. 우리가 그럼에도 모이는 이유가 뭘까요? 비대면, 영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기도만 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치 환자와 의사가 화상 진료만으로해결될 수 없고 꼭 병원을 가야만 치료될 수 있는 것이 있듯이, 우리의 삶에서 나의 영혼을 치유하고, 구하려면 만남을 가져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만남을 통해 우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1독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그나마 밥은 먹으며 살았지만 노예로 살며 자유는 없었던 곳을 탈출한 이들이, 이제 자유는 얻었지만 예전 것을 누릴 수 없는 광야에 살면서 오히려 예전 노예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이유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정작 무엇이 중요할까요? 교회를 통해 얻는 이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럽게도 신앙의 시작이 항상 순수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길 바라거나, 여기 모인 사람들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충족시키려 했습니다. 그래서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도 하고, 여기서 나의 존재감을 뽐낸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지금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여긴 이제 더 이상 불필요한 곳’처럼 여기며 다시 오지 않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온갖 것을 다 만나보셨고요. 이제 나의 생활을 다시금 점검할 때입니다. ‘나는 이곳을 통해 어떤 진짜를 만나야 할까요?’
우린 답을 알고 있습니다. 본능대로, 욕구대로 살지 않으려고 여기 왔다는 사실을요. 욕구를 넘어설 때 진정한 사랑이 나오지요. 진정한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고 감내합니다. 위기에 봉착하고 그걸 넘으며, 위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증언합니다. 주님이, 성인들이 당시 상황을 그렇게 이겨나갔습니다. 사랑은 어떻게든 상처의 흔적을 남깁니다. 산고의 고통, 올림픽 승리를 위해 연습하다가 부상을 입기도 하고요. 예수님 십자가의 상흔, 가족, 연인끼리 다투고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그것이 상처로만 끝나지 않지요. 오히려 결속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우리는 가난한 주님이 말씀한 ‘생명의 빵’ 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그동안 본능과 이익에 충실했던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준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어려운 현실을 이기는 방법을 얻을 수 있고요. 하느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갈 참 지혜를 얻습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