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화요일

2021. 8. 16. 오후 10: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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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0주간 화요일. 판관 6,11-24; 마태 19,23-30

 여러분은 평소 하느님을 느끼십니까? 어쩜 대답을 잘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있으면서 자기가 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미 하느님 품 안에 있는데, 하느님의 섭리 하에서 살고 있는데 그걸 잘 못 알아듣는 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여기에도 단서(但書)는 붙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생각처럼 선한 의도와 행위를 하면서 살고 있다 면  하느님을 느낄 수 있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그저 나의 욕심일 뿐일 것입니다.

 독서의 판관기에 나온 기드온은 힘센 용사였지만 자신이 주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랬기에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물론 본인의 약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건 겸손이건간에요. 하지만 주님은 거기서부터 시작하십니다. 약한 이들을 골라 그들을 높여주며,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십니다. 마치 예수님의 12제자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소 생각과 달리 오히려 약한 이들을 선택하셔서 일을 진행시키지만, 도구의 역할을 한 이들이 자신을 하느님보다 높이는 순간 문제는 터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세상 창조 때 하느님은 온갖 것을 다스려라 라면서 자연과 동식물을 관리할 사람을 손수 빚어 만드셨지만 그들이 들은 다스려라를 잘못 이해한 나머지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천주교인이며 성경을 읽었다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남미에 가서 그 곳 주민들을 식민지로 삼고 노예로 부리지요. 게다가 이를 본 다른 사람들도 자연을 관리하면서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키워 잡아먹을 궁리, 돈 벌 궁리만 하는 통에 기후와 자연은 망가져버렸습니다.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굳어버립니다. 필요한 이에게 언제든 내어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우린 자유스러울 수 있는데 말이지요. 여기서 오늘 복음 마지막에 나온 구절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교회에 있으면서 능력있고 잘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졌던 것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자기 잘난 맛으로 살다가 스스로 교회를 등지거나, 쫓겨난 이들도 보았습니다. 이른바 이들은 처음에는 좋았지만. 끝은 성장한 것이 아니라 퇴보한 것이었지요. 우리 주변에도 평소 신심 좋고 열심했던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그것을 유지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는데요. 이 삶은 그래서, 겸손하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총이라는 그릇을 스스로 깨뜨리지 말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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