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간 월요일

2021. 8. 29. 오후 11:40:45

글자

연중 22주간 월요일. 1테살 4,13-18; 루카 4,16-30

 언제나 우린 희망을 만나고 싶습니다. 뭔가 기대할 그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오셔서 그 기대치를 채워주십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복음의 전반부에 해당되는 내용이구요. 그 다음은 좀 분위기가 바뀝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여기엔 이런 뜻이 담겨있겠지요. 저 사람을 내가 좀 아는 데... 별거 없는 거 같은데.. 자꾸 뭔가를 하려고 드네?’ 라는 어투죠. 우린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면, 동네에서 알던 관계에 사람에 대해서는 좀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을 보이죠.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네가 가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보아라 그러면서 쎈 발언들을 계속 하시지요. 여기서 우린 불편한 장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믿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보여주신 모습들은 충분히 사람들을 감동케 해주고, 무언가 제대로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합니다. 이에 대해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라는 반응이 나오지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시각이 모두를 어둡게 만들어 버립니다. 예를 들자면 질투나 열등감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 죽음만큼, 두렵고 불안한 것이 없지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바오로가 말합니다.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 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우린 가끔 내 눈높이에서 모든 걸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이상을 보여주셨고 제시하셨습니다. 게다가 현실에서도 가끔 그런 것을 만나게 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는 우린 곁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봐주고 있나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