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일

2021. 9. 11. 오후 3:24:15

글자

연중 24주일. 이사 50,5-9; 야고 2,14-18; 마르 8,27-35

 여러분과 저는 행복하기 위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행복,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행복은 마치 찰나의 순간처럼 과정중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행복은 멈춰져 있는 성질이 아니기에 부단하게 행복을 느끼고 바라는 것이 사람인데요. 여기서 잠시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어릴 때는 만족을 주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먹는 것도 사탕, 초콜릿, 젤리처럼 자극적이고 당장의 단맛에 치중했고요. 하는 사업도 나와, 또 나와 관계된 주변인들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를 따졌습니다. 커서는 어떻게 달라집니까? 쌉쌀한 맛을 배우며 삶의 의미를 알아갑니다.마치 , 담배, 커피 등을 맛보며 거기서 주는 맛이 뭔지, 그 맛이 주는 풍미를 알게 됩니다. 비록 맛은 쓰지만 삶의 희열이 무언지, 삶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배우며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내 생각과 다른 것도 배웁니다. 하는 사업도 단지 본인 만족이 아닌 모두를 살리기 위한 길을 모색합니다. 앞의 어릴 때 상황 결과는 어떨까요? 나는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민폐나 희생을 강요했고요. 나도 모르는 갑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회사의 입사 조건을 따질 때에도 자신의 휴가를 보장해주는 것에 주안점을 둔답니다. 왜냐고요? 중요하다는 나만의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지요. 그럼 다른 관계된 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나만 잘되면 되니까요. 그럼 커서 상황의 결과는 어찌 되나요? 처음은 어렵지만 자신을 수양하고 희생하면서, 남의 비난이 따르더라도 소신있게 사명감을 다하며 삶의 열매를 맺으려 합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상생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회사 등 사회생활도 그렇잖습니까? 처음에는 자신의 수입보장을 위해 입사했을지 모르지만, 점차 회사가 발전하고 성장해야만 사원과 딸린 식구들이 생계유지가 가능함을 알면서, 자신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장받기보다 회사의 이득을 위해 힘을 씁니다. 그래야 다 살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저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주님이 가르쳐주신 공동체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여기서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이 보이십니까? 이미 일상 중에서 벌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전혀 다르지가 않습니다. 내가 벌이는 시도가 최선(最善) 그야말로 최고의 선한 선택인지 아는 것은 아이들도 할 줄 아니까요. 여기서 나의 이기심과 맞서 싸울 수 있는지부터 봐야 하는데요.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1독서처럼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모욕과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처럼 소신을 지킬 줄 아는 맷집도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뒤에는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그걸 잊지 않을 때 용기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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