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금요일. 요엘 1,13-2,2; 루카 11,15-26
현재 내 속에 무엇이 들어앉아 있는 지 아시나요? 좋은 것만 남아있고, 선한 것만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내 안에는 가지지 못한 열등감도 들어있고요. 지키고 싶은 자존심도 들어있고요. 여러 군더더기 욕심도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옳고 좋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상한 필터링이 있어서, 내 방식대로 이상하게 왜곡하여 바라보곤 하는데요. 여러분 안에는 어떤 필터링이 작동하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한 사람이 주님으로 인해 치유되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가 묘합니다. 이른바 뭔가 불편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서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는 말을 해댑니다. 우리도 이런 것에 쉽게 물들게 된 세상입니다. 요사이 대선을 앞둔 정치가들이 뱉어낸 말을 듣고, 보여주는 행동을 일단 그대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동안 워낙 속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도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인지, 일단 비틀어 보면서 시작합니다. 또는 환상처럼 무조건 좋아라 바라봅니다. 이런 시각은 주변 이웃 사람들에게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뭔가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려듭니다. 그러면서 ‘내가 남보다 똑똑하다, 식견을 가지고 있다. 속지 않는다’ 라는 자위를 하면서요. 그것이 정말 원하는 결말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라면, 이제부터 인정하셔야 합니다. ‘나의 마음 씀씀이가 뒤틀려 있다는 사실’ 을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입고 밤을 세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 이른바 당시 시대에 알만한 사람들, 지식인들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지 못했기에 참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엘 예언자의 예언인데요.
무언가를 바라볼 때 비판하는 시각은 필요합니다. 그 밑에 깔려있는 것을 보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너무 그런 시각에만 사로잡히면, 세상에 기대할 것이 없는 비관주의, 혐오주의로 흐릅니다. 우리 자신을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