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화요일. 로마 1,16-25; 루카 11,37-41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면서 많은 곤란에 빠지는데요. 그러다보니 내 생각에 빠져서 그 안에 함몰되곤 합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처럼 너무 판에 박힌 듯 외우는데 신경쓰느라, 다르게 다가온 것에 대해 의문, 질문없이 무작정 비판하거나 합니다. 판에 박힌 듯 외우고 습득하는 방법이 막 시작하는 단계나 어릴 때는 통하지만 좀 크거나, 성장하면서 더 큰 단계를 만나지 못하는 문제점에 봉착하지요. 그래서 기도를 하더라도 묵상, 관상을 힘들어합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지요. 살아왔던 자기 삶과 살아온 세상 방식에서만 모든 것을 보려는 자세입니다.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편협하게 되지요. 자신의 성장환경과 배경 안에서 모든 것을 보려드니까요. 당연히 더 깊이 알려는 시도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복음을 많이 읽었다지만 ‘아버지’ 라는 분에 대해 좋은 경험이 없으면, 잃었던 아들의 비유를 보며 이런 생각에 빠지죠. ‘난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의 경우와는 다른 사람이야 그렇게 엇나간 적은 없으니까. 나는 모범생처럼 살아왔어.’ 하지만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데 그것을 보지 않고 집 나간 아들 관점에만 머무는 경우처럼요. 이런 것도 있지요. 자신의 노화 과정 중에서 벌어지는 몸과 마음 여러 곳이 아프다보니 고통과 삶의 불안함에 가로막혀 주님이 주신 ‘희망의 약속’ 을 보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살면서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 중에 하나입니다. 잘못되었다기보다는 현실에 있다보니 가로막힌 것을 만나는 건데요. 우리는 이제 자기 관점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자기 안에 갇히려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하신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에서 먼저 자선 베풀기에 앞서서 “속에 담긴 것”부터 봐야 하겠지요.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나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지요.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만의 생각으로 사는 헛똑똑이가 되면 안되겠지요. 내가 그동안 습득해 온 것을 살펴보면서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