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세례식) 이사2,1-5; 로마10,9-18; 마태 28,16-20
이제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적인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하실텐데요. 그것도 여러분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말이지요. 여기서 잠시 인류가 가졌던 관심 사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내가 받을 세례가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인지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고대사회에서의 관심은 세상이 어떤 존재로 만들어졌느냐?를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탈레스를 비롯한 학자들이 물,불,흙,공기 등의 원소를 말하며 세상이 만들어진 근원을 따졌지요. 중세에 오면서 존재의 근원은 바로 신, 하느님이라 여기며 중세시대의 많은 문화가 발전되었고요. 근대에 들면서 다시 고대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교회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들이 자연을 설명하더라도 하느님 없이 설명하는 시도를 합니다. 그게 르네상스죠. 그러면서 철학도 처음에는 ‘진리와 존재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다가 점차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아듣느냐?’ 즉 내가 아는 것과 실체가 과연 같으냐? 아니면 다르냐? 라는 인식론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이제 현대에 와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겪으며 이렇게 변화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와 소용, 필요가 있는거야?’ 라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내가 믿는 종교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속이 시원하지요. 헌데 여기서 이런 것을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계속 변했다는 점입니다. ‘우린 변치않는 것을 만나면서 나 자신의 변화되는 상황을 붙잡고 진정시키며 평화를 찾고 싶은데..’ 문제는 나조차도 계속 변하고요. 세상도 변합니다. 그래서 학문도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배운 개별학문, 개별적인 기술만 익히면 된다고 여겼지만 이젠 아닙니다. 과거에는 소수의 정보를 기억하면 된다고 여겼지만, 이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다 찾을 수 있고요. 대신 거대하게 늘어난 정보를 어떻게 포괄하고, 전망하여 내 것으로 창조할 것인가? 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계속 만날 수 밖에 없고요. 나의 분야를 넘는 만남을 통해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릴 수 밖에 없는 세상을 살게 된 것입니다. 과연 나는, 나도 잘 모르는 것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럼 모르는 것을 알려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솔직히 그동안 신, 하느님에 대해 잘 몰라도 별 문제 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이런 게 들어있었지요. 바로 무관심입니다. 유명한 철학자며 수학자인 파스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무신론자들은 너무 경솔히 믿는 사람이다’ 여기서 경솔히 믿는다는 말은, 하느님이 없다고 부정할 만한 제대로 된 근거를 대지 못하고, 무턱대고 그분은 없다고 여긴 경우가 많다는 얘긴데요. 자기가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으니 ‘하느님은 없다’ 고 말하는 편이 제일 쉬운 방법이지요. 허나 우리가 받은 생명이 그냥 주어진 것입니까? 많은 자연 만물의 생명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거 하나 제대로 설명 못하면서 그분을 경솔히 여겼습니다. 이제 우린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알거나 모른다는 것을 아는 내 생각 이상의 상위인지’ 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내가 현재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당연히 알려는 시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때부터 배움에 대한 욕구가 생겨납니다. 그럼 모든 만물의 근원은 뭘까요? 존재하는 인간 이상의 것을 찾을 때,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요. 많은 가르침이 있겠으나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 속에서 답을 찾을까 합니다.
1독서에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말씀은 원래 사람을 죽이려 만든 살해도구를 이젠 보습과 낫이라는 농기구로 바꾸려듭니다. 왜냐고요? 주님이 가르치신 사랑이 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2독서의 내용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라고 기술합니다. 왜냐고요? 사람이 하물며 안 좋은 것도 전하면서 이득을 얻는데, 좋은 것을 알리면서 기쁨을 같이 나누고 얻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복음에서처럼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라는 말씀에서 참된 가르침을 알리고 지킬 때 서로를 살리는 길이 무언지 알아듣는데요. 우리 주위에는 변하는 것들과 변치않는 것들이 있지요. 그동안 변하는 것들을 붙잡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변치않는, 불변하는 주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자칫 흔들리기 쉬운 여러분의 삶을 잘 붙잡고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