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자존심과 자만심, 그리고 자기의 기분을 더 크게 생각하는 때를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곁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도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더 내세우기 때문이지요. 아랫 사람 입장에서는 뭔가 억압되게 시키는 것만 보일지 모르지만 다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질서를 유지하고, 뭔가 되어가게 하게끔 유도하는 데요.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이란 이미 우리에게 있었던 옛 전통인 ‘순명’입니다.
‘순명’ 하면 왠지 본인이 낮아진 것 같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처음부터 높은 사람이 아니고, 잘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배우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당연한 순서입니다. 본인이 창업한 사장님도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자신을 더 내세우는 자세는 오히려 그곳을 힘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독서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합니다.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린 기껏해야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지만 하느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라면, 차원이 다른데요. 우린 이런 분을 만납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엘리사벳 수도자는 원래 결혼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잃게 되면서 제대로 살아내고자 재속회에 들어갑니다. 교회법 303조는 세속에 몸담은 평신도들을 위한 이 3회에 대해 “세속에서 어느 수도회의 정신에 동참하여 그 수도회의 상급 지휘 아래 사도적 생활을 살고 그리스도교 완성(완덕)을 향해 노력하는 단체들”이라고 규정하고 있고요. 갈수록 복잡해지는 생활 속에서 영적 공허함을 느끼며 이를 해소하려는 평신도들의 욕구가 증대하면서, 수도회의 영성을 세속 안에서도 느끼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인데요.
물론 여기서도 많은 회칙과 제약이 따릅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이른바 사회의 묻은 나쁜 악습을 씻고 새로 시작하면서 자신을 죽일 줄 아는 순명 정신이 필요한데요. 민주주의가 아닌 교회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모시고 2천년의 역사가 가능했던 이유가 뭘까요? 순명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항상 좋고 옳은 일만 하지 못한다면 먼저 자신을 잘 관리하려면 먼저 이것을 했던 이들을 잘 따라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