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 금요일. 이사 48,17-19; 마태 11,16-19
혼란한 시대를 삽니다. 자기 욕심에 빠져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안목(眼目)’이 있는 지를 따져봐야 하는데요. 안목은 그 사안이 중요한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를 파악하는 첫 단계인데요. 이것부터 잘못되면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회개를 강조하고 스스로 금욕적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요한이 왜 그랬을까요? 구세주의 오심을 알았고 준비하기 위해서였지요.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라며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당신의 오심으로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즉 자기식대로만 보려들면 상대방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을 보십시오. 우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엄마가 왜 저래? 아빠는 왜 저런 말을 하는거야?’ 당연하지요. 우리의 어르신들이 그렇게 세세하게 말씀하는 분들이 아니니까요. 의도를 모르니, 또 하나하나 차분하게 말하는 분들이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하지만 나중에 우리도 깨닫게 되지요. ‘아 부모님이 말하는 의도가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어른이 되면서 헤아리지요. 그래서 독서도 이런 탄식을 합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즉 시대를 못 읽고, 그에 따른 안목이 없다면 매번 하던 대로 하다가 망하는 것을 우린 참 많이 봐 왔습니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잖습니까?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을 키우는 첫 단계는 ‘관찰’입니다. 관찰을 할 때 작은 것들의 움직임을 보며, 내가 해야 할 바를 압니다. 해왔던 방식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시대가 몇 년전 상황과 다른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마스크를 2년 전에는 쓰고 있지도 않았지요. 보는 눈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