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일

2021. 12. 11. 오후 8: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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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일. 스바 3,14-18; 필리 4,4-7; 루카 3,10-18

 잠시 그동안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해왔던 사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는 국가가 하지 않았던 사업들을 해왔습니다. 학교가 생기기 전에 수도원에서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켰고요. 병원이 생기기 전부터 아픈 이들을 돌봤습니다. 그것이 이젠 국민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국가나 사립기관에서 그것들을 넘겨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국가가 하지 못하는, 또는 국가가 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교회는 사회교리를 가르치고, 장학사업을 펼치고, 중독자들을 돌보고, 우울증 및 자살을 예방하고, 노숙자들을 위한 밥집 등을 운영하며 교회는 지원을 하고 있고요. 본당에서도 빈첸시오 등을 통하여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습니다. 교회는 왜 그래야 할까요? 우리가 모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향한 사랑을 보이셨기에 우리도 닮아 그것을 하는 건데요. 헌데 문제는, 그런 사랑과 봉사를 한다는 당사자인 우리가, 기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봉사활동을 하곤 있지만 부담감 때문에 빨리 벗어버리고픈 이유가 있을텐데요.

 여기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메마름과 갈증을 보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돕기 전에, 지금 우리의 삶이 그다지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치이면서 있던 자리가 위태롭고요. 사회 경제적으로 쪼들려 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인 몸부림을 펼치지만, 여전히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 나를 살리기위한 몸부림이었고, 가족을 살리려는 애씀이었건만,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처럼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회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가진 관심과 사랑이 결국 나 자신의 만족으로 쏠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오늘 자선 주일을 맞이하여 이런 것을 봐야겠습니다. 남을 돕는 주님의 진정한 힘은 어디서 기인하였을까요? 그 저력과 에너지는 어디서 계속 생성될까요? 그걸 만나야 의문이 풀리는데요. 시선을 깊고도 넓게 바라봐야겠습니다. 나의 허하고 가난한 모습만 보면, 답은 안 나오고 오히려 부담감만 늘어납니다. 채우고픈 욕심과 본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눈덩이처럼 더 커다란 욕구가 되어 욕망이 욕망을 부르는 형국이 됩니다. 그래서 우린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욕망을 채우려다가 피해를 입은 나의 허하고 가난한 모습을 쳐다보면서, 이젠 주님을 통해 힘을 얻고 그 힘을 다른 이에게 전할 때에 비로소 내가 사는 이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뭔가를 채우려 드는 것은 본능을 만족시키는 행동입니다. 본능을 넘어선 자비와 사랑으로 넘어가야 하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게 없던 사랑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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