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2021. 12. 17. 오전 6: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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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창세 49,1-10; 마태 1,1-17

 우리가 받은 나의 생명, 가족의 생명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요? 문득 사는 게 덧없고, 힘들고, 보람없게 여겨질 때, 모든 것을 관두고 싶고요. 그래서 사는 맛을 잃을 수 있는데요. 어제 강론 중 잠깐 인용했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는 말씀을 패러디하여 정문 철문에 크게 붙여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독일 다하우 수용소라고 아우슈비츠처럼 1933년에 건립되어 나치를 반대한 정치인, 종교인, 유대인을 가둬놓고 강제노동과 인체실험을 한 곳으로 1945년까지 40만명이 갇히면서 4만명을 숨을 거둔 곳인데요. 앞서 언급한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시련의 상징물인데요. 비록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못한 곳이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썼습니다. 그 몸부림이 자신을 증명하고픈 하나의 증거가 되었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말하고픈 것이었는데요.

 모두가 들으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족보가 나왔고요. 야곱은 후대 벌어질 일을 알리며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문득 사는게 덧없이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받아든 나의 삶과 소명을 어떻게 간직하며 지켜가려는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난관을 거치면서 자손들이 대를 이으며, 그저 자기 한 목숨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비록 어려운 시대를 살았지만 너희들은 더 나은 시대를 살게 해주려 몸부림치며 노력하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라며 뭔가를 해나갈 때 마치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오신 엄청난 구원의 변화를 나의 삶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데요. 나를 위해 살긴 하겠지만 나만 살아서도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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