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예레 23,5-8; 마태 1,18-24
주일마다 대축일처럼 큰 날에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을 읊습니다. 특히 이 기도문에는 깊이 머리를 숙이며 절을 하는 부분이 있지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성모님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약속의 실현된다는 하느님의 구원이 인간의 역사 안에 오셨다는 사실에 깊은 절을 하고 있습니다. 예. 놀라운 일이지요. 하느님이 직접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셨음을요.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될 일이라 여길 수 있지만 그동안 사람들이 해왔던 일은 하느님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혀끝으로는 ‘하느님을 믿는다. 주님을 찬미한다.’ 했지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한 수많은 예언자들을 죽여왔고요. 우상숭배를 하고 계명을 따르지 않는 표리부동한 삶을 살며 다른 나라들이 세운 임금을 자기들도 세우며 다른 나라처럼 침략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찌해야 할까요? 여기에 ‘고난받는 주님의 종’ 이란 이사야서의 말씀을 생각게 합니다. 구세주의 운명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겪게 될 운명을 서술합니다. 모든 이의 구원, 즉 우리를 위해서지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당신이 오셨건만 사람들은 그분을 몰라봅니다. 가난한 목동, 이방인 선지자인 동방박사말고는 경배하러 오지 않습니다. 헤로데 왕도 ‘한 번 다녀와서 얘기해달라’ 했을 뿐, 자기 정권 유지에 관심이 가 있어 2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여버리지요. 이처럼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괜한 주목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예수님처럼 조용히 오셔서 할 일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보라 그날이 온다.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그 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내 삶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 내리듯 잘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