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1일. 아가 2,8-14;루카 1,39-45
많은 분들이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남과 비교하면서 이것 때문에 부러움을 가지면서 한편으로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바로 ‘상대적 빈곤감’ ‘상대적 박탈감’ 이지요. 남이 승진했다. 아이가 좋은 학교 갔다. 집값이 뛰었다. 등등 말이지요. 많은 분들과 면담하면서 교우분들은 비신자처럼 이런 것은 없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심한 것을 느끼곤 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저에게 주례사제를 구하려 했었다는 나중에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식이 들리기 전에 순간 취소시켰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왜냐고 물어보니 신랑 아버지가 사업이 망해 그럴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고요. 자신의 사업때문에 자식의 혼사까지 막아서고 있었는데요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부럽고 한편으로 빈곤감에 빠져있습니까? 그럼 병든 삶을 살피기 앞서 건강한 삶이 어떤 것인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여인 두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엘리사벳과 성모님입니다. 둘 다 치부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쪽은 그동안 애가 없어서 부러움으로 삶을 살았던 여인이고, 또 한쪽은 갑자기 미혼모가 됩니다. 남편 요셉성인이 도와주긴 합니다만 한편으로 요셉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이 있는 둘이 오늘 만납니다. 먼저 엘리사벳이 인사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만약 엘리사벳이 ‘나도 예수님 엄마 하고 싶다’ 는 부러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면 이런 인사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성모님의 인사말에 자신의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음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에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하면서 주님을 애인으로 여기면서 자신에게 오고 있음을 기뻐합니다.
저는 가끔씩 사랑이 넘친 예비부부들과 만납니다. 혼배교리나 혼배면담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자기 짝꿍하고 옵니다. 그런데 자기 애인보다 더 괜찮다고 하여 한눈 파는 이들은 없습니다. 오히려 옆에 앉은 자기 애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강의를 듣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받은 사랑의 삶을 살펴볼 때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살필 때, 그저 부러움에만 사로잡혀있던 나의 삶을 건져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