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화요일. 1사무 1,9-20; 마르 1,21-28
드디어 전례력의 연중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의 활동이 펼쳐지는데요. 여기서 예수님의 어떤 면이 보이십니까? 오늘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있는 가르침이다.”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시니 나온 평가였습니다. 여기서 ‘권위’와 ‘권위적인 것’의 구분이 필요한데요. 미사를 시작할 때, 앉아계셨던 여러분은 모두 일어섰습니다. 왜 그러셨나요? 미사를 맞이하는, 주님과 집전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마치 재판정에서 재판이 시작될 때, 모두가 일어서고요. 변호인들이 판사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권위를 대하는 복종의 자세입니다. 이처럼 권위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요. 그 권위를 지켜주며 가치있는 것을 더 가치있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권위적인 것은 ‘어떤 일에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복종하게끔 만드는 태도’를 갖습니다. 이른바 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일부러 복종시키도록 만듭니다.
‘권위’를 뜻하는 라틴어 ‘auctoritas’(authority)의 어근(語根)은 ‘auctor’(author)입니다. ‘auctor’는 ① 문학에서 ‘저술가’라는 뜻이고요. ② 몸소 창작한 원작자(原作者), 원저자(原著者)’ ③ 뒤따를 만한 스승 ④ 증인, ⑤ 보증인, ⑥ 어떤 결정에 조언을 주는 고문(顧問), ⑦ 대리인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집니다. 이 다양한 의미의 중심축은 ② 원작자 라는 의미이고요. 나머지는 신뢰할만한 진정성과 보증의 힘을 가지며 타당성을 제공하는 힘이 제공됩니다. 그럼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어떻게 구별될까요? 사실 모두 ‘관계의 개념’들입니다. 둘 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만 나타납니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그 관계의 효력을 일방적으로 강제하여 관철하는 반면, ‘권위’는 수용자 측에서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인정을 할 때 얻어집니다.
여기서 더러운 영은 그 권위에 복종하고 물러났고요. 독서의 한나도 아들을 원했기에 울면서 기도하지만, 이내 엘리의 말을 듣고 물러나 부부관계를 맺고 사무엘을 낳습니다. 아무리 지금 세상이 평등을 지향한다지만 권위가 없으면 소중한 것과 가치있는 것을 지켜내지 못하는데요. 주님이 가르쳐주신 권위있는 가르침을 되새길 때, 그것이 우릴 살려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