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1열왕 3,4-13; 마르 6,30-34
사람인데 어찌 바라는 것이 없겠습니까? 욕심을 줄여다 한다지만 필요한 욕구는 있지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겠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무얼 청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청하는가에 따라 나의 앞날도 보이는데요.
저는 예전 서품성구를 정할 때, 근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남들은 이렇게 길게 시간을 들이지 않는데, 예전부터 이런 말이 있었기에 더욱 준비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 말이란 ‘신학생 때 생활이 곧 신부 생활로 이어진다’ 는 격언이었습니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지요. 평소 모습이 그대로 이어지는데요. 그래서 준비기간이 길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구절이 “항상 깨어 있어라” 였습니다. 남들은 잘 채택하지 않는 열 처녀의 비유 마지막 구절은 우리 신앙의 종착지인 재림하는 주님을 보여주는 ‘구원신앙’을 제시하면서, 현실에서는 교우들의 앞날을 제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제가, 교우들에게 더 나은 것을 선택하게끔 도와야 하기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이 사실을 모든 이가 동조하지는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말 잘 들어주기를 바라는 요사이 풍토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될까요?
오늘 독서에 솔로몬이 주님께 자신의 바람을 요청하자 하느님께 답변을 듣습니다.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거나, 부를 청하거나, 원수의 목숨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사람과 다른 바람을 요청했기에, 그 바람이 오히려 자신의 발등을 찍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우린 어떤까요? 우린 뭔가를 바랄 때에 인간적으로 바라는 것을 바라지요? 그러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 바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하는 눈앞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단기이익이지요.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아가타 성녀는 자신의 순결을 봉헌하며 현재 본인이 가진 최고(最高)의 것을 바칩니다. 여기서 이런 구조를 봅니다.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드리면서 주님께 받는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을 위해 평소 번제물을 바쳤고요. 예수님도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여러 곳을 다니시며 수고하셨고요. 아가타 성녀도 자신을 바치는 자세에서 성인품에 오를 수 있었는데요. 우린 무엇을 바라고 있고, 무얼 주님께 바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