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2022. 2. 13. 오후 11:12:47

글자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야고 1,1-11; 마르 8,11-13

 그동안 광야에서 기도만 하던 은수자가 드디어 사막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그에게 묻습니다. 말씀해주세요.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지만 그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어놓을 수는없지요. 마음속 깊은 데서 겪은 바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도 졸라대는 통에, 비록 부정확하고 적절한 표현은 아닐지언정 그가 체험한 바를 그들도 하느님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양식문 하나를 만들어 그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양식문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그걸 바탕으로 성문서를 만들고, 누구는 신성한 신조로 믿도록 의무를 지웠으며, 누구는 큰 수고를 하며 해외로 나가 전파하고, 누구는 그러다 순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본 은수자는 슬펐습니다. 그런 말이랑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할 믿음은 참된 신뢰감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어떤 외형적인 움직임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오늘 예수님은 슬프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어떤 표징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매끄러운 말이나 기술로 표현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그런 요구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렇지요. 뭔가 외형적으로 갖춰져 있는 그 무언가를 원합니다. 그래야 권위가 있어 보이고요. 또 그렇게 알아듣습니다. 사람들이 차나 집을 바꾸거나, 돈을 써도 그렇에 지출하는 이유가 그렇지요. 반면 우리네 스타일을 다릅니다. 먼저 자신이 주님과 신뢰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치릴로 수도자와 메토디오 주교님도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었기에 계속 뿜어져나오는 그 뭔가를 줄 수 있었고요. 우리게 필요한 것은 분석이 아니라, 의심이 아니라 주님께 푹 담겨있는 삶입니다. 그걸 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