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목요일.

2022. 2. 16. 오후 10: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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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6주간 목요일. 야고 2,1-9; 마르 8,27-33

 자기를 드높이며 자신을 드러내려는 세상입니다. 인스타 등의 SNS를 하며 유튜브를 통해 자기를 홍보하는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홍보해야 먹고 사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구식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낮추라고 말하고요. 드러내지 말라고 하고요. 본인의 자아를 굽히라 말합니다. 이것을 따지기 앞서서, 우리가 모인 이곳이 뭘 하는 곳인지부터 따져봐야 하는데요. 여기는 여기만의 방식으로 살아왔고 이겨왔기 때문입니다.

 ‘칠극이란 책을 아십니까? 스페인 선교사인 판토하 신부, 중국에서 살았으니 중국 이름으로 방적아 신부가 1614년 북경에서 한문으로 펴낸 천주교 수양서입니다. 이것이 우리 조선에 건네지면서 당시 지식인들에게 선풍적인 파급력을 보여줬는데요. 칠극은 7가지 죄를 이기자는 뜻으로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에 관한 지침서입니다. 오늘 독서는 차별 문제를 다루기에,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을 봐야 하는데요. 왜 사람이 교만해질까요? 그 이유를 4가지로 설명합니다. 선함이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여겨서 하느님께 공을 돌리지 않고 그 공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줄 알면서도 자기의 공으로 돌리며 실제로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음을 오히려 뽐내면서 남을 우습게 여겨서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독서 내용도 그랬지요. 사람끼리 갈라치면서 편을 나누고, 자기만의 세력을 키우고 다른 이들이 거기에 못 들어오게 합니다. 지금도 이와 다르지 않지요? 우리가 그런 구석이 있는데요. 이런 모습이 내게 있음을 인정한다면 다음 순서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이는 행위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미리 알려주십니다.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신 살아나셔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인간적인 것에 얽매인 베드로는 주님을 붙들고 반박하지요. 왜 그럴까요?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요. 예수님 통해 팔자 고치고 싶었는데 오히려 죽겠다고 하시니 이해가 안되지요. 우리에게도 옛말에 생즉사 사즉생(生卽死,死卽死) 살려는 자는 죽고,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다는 말이 있지요. 우린 우리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과 소금의 비유처럼 빛을 내지 못하고, 소금이 짜지 않으면 쓸모없고 고유함을 잃듯이, 할 수 있어도 안하고, 절제하며 배운 바를 통해 실천해낸다면 진정한 가치의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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