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토요일

2022. 2. 19. 오전 10: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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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6주간 토요일. 야고 3,1-10; 마르 9,2-13

 요한복음 83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우리가 겉으로 주님을 믿는다, 당신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그분을 따르며 자유스런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걸려 넘어지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혀를 놀리며 말하면서 배웠던 사랑과 반대되는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참됨을 추구하는 자세와는 동떨어진 경우가 참 많지 않습니까? 솔직하지 않은, 가식적인 말을 통해 자신을 꾸미고, 이미지를 치장하고, 뭔가 칭찬받기를 바라는 뭔가가 깔려있는 우리네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자세로 살다보면 베드로가 얼떨결에 응답한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라며 본인이 뭘 말하는지도 잘 모르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주님을 만나고, 맛보고, 체험하는 데에는 먼저 불필요한 것에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푹 당신께 잠기면 나머지는 당신께서 알아서 해주시는데 우린 자꾸만 거추장스런 그 무언가를 하려듭니다. 이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삶이 단순해지고, 담백해지고, 억지스러움이 없다면 이는 좋은 신호입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기반이 다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쫓으며 좋아했던 잔재미가 사라진다면 이는 다행스런 일입니다. 더 깊이 몰두할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TV를 봐도 즐겁지 않은 건 고마운 일입니다. 그들이 중점을 두고 말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인은 겨우 10%정도의 신자율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대다수가 우리네 방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이런 시각을 갖기에 스스로 우리가 느끼기에 외롭거나 우울할 수 있습니다. 허나 이 미사 시간에 이렇게 참례하기 위해 많은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숙달되기 위해서 꾸준함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맛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좁은문의 비유처럼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건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주님의 변모사건처럼 하느님과 가까워지며 우리 안에 변화가 되길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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