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금요일. 야고 5,9-12; 마르 10,1-12
천주교는 진보적입니다. 사람들의 의식주에 관심을 가지며, 가난한 이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이웃돕기를 실현하려고 애씁니다. 천주교는 보수적입니다. 지킬 것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법질서의 체계화를 통해 교회를 잘 유지하고 관리해왔고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의 정의를 부르짖었습니다. 천주교는 진보적입니다. 부유함에 대해 경고해 왔으며 부자로 사는 탐욕에 대해 비판을 해왔습니다. 천주교는 보수적입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쳤으며 부부의 이혼에 대해서는 늘 반대해 왔습니다. 이제 여쭙겠습니다. 천주교는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그렇지요. 둘 다 아닙니다. 천주교는 하느님이 말씀하신 정의와 사랑을 지금까지 부르짖었으며,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제대로 살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 이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었다고 해서 여러분이 왜 갈라져야 합니까? 왜 한쪽 편에 치중하여 그 목소리만 들으려 하십니까?
오늘 복음이 그랬지요. “따라서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다른 환경에 살았던 이들이 어른이 되어 같이 살게 되었는데, 서로가 항상 통하고 죽이 맞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같은 가족끼리도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고민이 됩니다. 내가 갖고 있던 사랑을 어떻게 보존하고 유지 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이들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 합니다. 황혼 이혼이라며 아름답게 포장해보지만 결국 손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후회도 많이 하십니다. 서로가 아픈 상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배우자를 택하기도 하였지만 그 배우자와 좋은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었던 여러 배경을 선사하신 하느님께 가진 것을 잘 돌려 드려야 하는데요.
우리는 이념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정쟁에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배운 신앙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왕정주의가 있기 전부터 생겼던 곳입니다. 역사도 짧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이념에 여러분이 휘둘릴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한쪽으로 쏠려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분별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