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일. 신명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여러분에게 있어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 막연하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아직 하느님을, 이 세상을 피상적으로 알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요? 여러분에게 있어 삶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 현실적으로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아직 신앙과의 연관성이 없는, 그저 이 모든 걸 나의 의지력으로 해내야 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요. 신앙이란 그저 믿음을 갖는 이에게 기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센터 같은 곳은 아니지요. 오히려 치열한 현장입니다. 나에게 닥친 사안을 어떻게 이겨나가는 지를 보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악마에게 3번의 유혹을 받으신 장면입니다. 너무 잘 아는 내용입니다. 여기 거론된 유혹의 종류를 봅니다. 첫째로 인간의 본능인 식욕을 건드리고요. 둘째로 인간의 본능인 욕망을 건드리고요, 셋째로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여기는 것으로 유혹의 손을 내밉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제일 사랑하고, 잘 안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먹이면서요. 헌데 어떻습니까? 유혹은 흔들리지 않으면 유혹이 아닙니다. 달콤한 그 무엇을 담고 있기에 많은 이들이 거기에 현혹되고 넘어갑니다. 게다가 내가 제일 가까이 하는 것,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을 통하여 시작됩니다. 관심 없는 분야는 유혹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을 건드리기에 사람은 자만을 하게 되고요. 거기에 걸려들어 넘어진 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예수님이 처한 유혹이 그저 막연한 그 무엇으로 여겨지십니까? 1,2독서에 나온 사안들은 그 많은 사안을 겪으면서 고백한 내용들입니다. 1독서는 이집트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신 분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2독서는 “예수님을 주님” 이라고 고백하는 이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인생 역사에서 체험을 했기 때문이고요. 그러한 기억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제 여러분께 여쭙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살면서 주님과의 어떤 기억이 있으십니까? 체험이 없다면, 유혹을 이겨낸 경험이 없다면, 여러분은 미안하지만 알맹이 없는 삶일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자신의 삶에서 치열하게 주님을 부르며 이겨 나가려 몸부림친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건성으로 넘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지켜야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