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화요일.

2022. 3. 21. 오후 10: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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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3주간 화요일. 다니 3,25-43; 마태 18,21-35

 어떤 사람이 뛰어난 가르침을 편다는 스승의 명성을 듣고서 직접 확인하고자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 나라에 도착하자 스승의 제자를 만났고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선생님은 어떤 기적들을 행하셨습니까?’ 그러자 스승의 제자가 이렇게 답을 합니다. ‘글쎄요. 기적 천지지요. 당신나라에서는 하느님이 어떤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면 그걸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여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 그걸 기적이라고 말한답니다 어떠한 기적이 더 하느님의 뜻에 부합할까요? 결국 그 스승이 뛰어난 게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대단했던건데요.

 우리 삶을 가만히 보면 뭔가에 씌인 듯한 삶을 살곤 합니다. 갑자기 분노에 휩싸여 격노하기도 하고요. 욕심에 휩싸여 더 가지려 부정을 저지르곤 합니다. 하지만 뭔가에 씌었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은 핑계이겠구요.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어떤 현상을 만나고서, 내 안에서 그 상황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해소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순간 뭔가가 불쑥 튀어나오는데요. 그러면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문제도 내가 평소에 나 자신을 어떻게 다스리고 관리했는지에 따라서 결국 다른 결론이 나온다는 말도 되는데요.

 오늘 독서 말씀에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과, 복음에 남을 용서하는 문제가 연결이 되는 것을 봅니다. 많이 용서받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 는 죄많은 여인이 비싼 향유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리는 루카 복음 736절의 말씀도 있지만, 그는 만 탈렌트나 빚을 졌음에도 이를 탕감받았으면 당연히 겨우 백 데나리온 빚진 이를 용서했어야 할 텐데 그러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멱살을 잡으며 감옥에 가뒀지요. 이는 자신이 평소 어떤 감사의 삶을 사는 지 보지 않고 살면 이렇게 됩니다. 복음에 나오죠.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며 혀를 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감사를 받았는 지를 잘 헤아리지 않으면 그리 됩니다. 예전 꽃동네에서 봉사할 때 일입니다. 알콜중독자인 환자가 어렵사리 콩팥을 이식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밤에 몰래 계속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결국 감사의 삶을 헤아리지 못했던거죠. 하지만 감사의 체험을 많이 한 이는 설사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다시 돌아올 회복의 확률이 높은데요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싶다면 내가 받은 은총의 삶을 헤아려야겠습니다. 그럴 때 자연스레 주님께 고마워하는 삶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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