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목요일. 예레 7,23-28; 루카 11,14-23
많은 사람이 얽혀 사는 곳에서 제대로 된 질서가 잡히며 문제없이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유민주주의라지만 오히려 무질서하게 보이는 이때에 교회 신앙인들은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우리의 영성은 그 시대의 요청과 목소리에 부합할 때 어긋나지 않고 옛 관습에만 메이지 않는 마치 보석같이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듯, 퇴색하지 않는 가치를 드러냈는데요. 요사이 자기 주관, 자기 목소리, 자기 이익을 드높이는 세상에 필요한 것은 ‘순명의 정신’ 일 것입니다. 순명은 단지 윗사람의 말을 잘 들으라는 고답적이며 캐캐묵은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렇게만 알아듣는다면 여전히 내안에는 불만이 쌓일뿐이고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순명은 ‘oboedore’ 귀를 기울이다. 경청하다는 뜻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의 말을 적극적으로 들을 때, 내 생각과 차이나는 것을 발견하며 더 선한 것을 찾을 수 있고요.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당연히 하느님께 나아가려면 일차적으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기에 그들의 의견을 수긍할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이것이 법과 규칙을 세워져 그 조직이 체계를 갖추게 되고요. 구성원들을 살립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명령이 공동체를 와해시키거나 악행, 죄를 짓게 만드는 순명이라면 여기에 해당사항이 되지 않습니다. 즉 모두를 살리기 위한 명령이구요. 결국 이는 하느님의 뜻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같지 않다” 는 이사야 55장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다른데, 하느님과도 같지 않음은 어쩌면 좁은 식견을 가진 우리의 솔직한 모습일 것입니다. 우린 여전히 개인적인 욕심에 갇혀 지내길 원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 자신을 물에 띄우듯 그렇게 해봐야겠습니다. 분명 참된 것은 가라앉아 나의 중심을 만들어 줄 것이고요. 괜한 욕심은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공개될 것입니다. 당연히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 자신을 그렇게 해볼 때 그동안 내가 무엇을 중시하고 살았었는지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순명은 필요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