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목요일. 탈출 32,7-14; 요한 5,31-47
우린 언제 행복함을 느낄까요? 내가 느끼기에 뿌듯하고 만족스러울 때요? 다른 이들이 칭찬해줄 때요? 일이 원하는 데로 돌아갈 때요? 그것이 당장에는 만족을 줄지 모르지만 과연 그 상태를 ‘진짜’ 와 만나고 있다고 느껴야 할까요? 아니면 허상임을 알면서 거기에 주저앉는 편이 더 나을까요?
요즈음 말씀들은 뉘앙스 자체가 따스하거나 부드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비난하시고, 모욕감을 주는 듯 보이며, 단언하시며, 반박의 여지를 불식시키십니다. 순간 차갑고 쎄한 느낌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씀하고픈 의도는 무엇일까요? 언제나 그렇듯 우린 ‘진실을 마주하기’ 보다는 ‘꾸며진 것을 선호’ 합니다. 화장하듯 꾸미고, 덧칠하며, 없는 것을 있게끔 치장하고, 마치 예전의 영화 알랑 드롱이 나온 ‘태양은 가득히’ 의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실제로 없는 것을 있게끔 부풀리며 사는 ‘리플리 증후군’처럼 실재의 나를 보기 꺼리거나 부끄러워 합니다. 허나 인정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경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제자가 하루는 부처, 예수님, 마호멧 등이 동시대로부터 반역자와 이단자로 낙인찍힌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스승이 말합니다. “천명의 진지한 사람들이 진리를 모독했다고 고발하기 전에는 아무도 자신이 진리에 정점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요.’
진리를 마주대하는 것은 한편으로 고통을 동반합니다. 무릎을 꿇으며 주님께 이런 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압니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요.
